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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an 25. 2024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다섯 번째 아날로그 (글쓰기 2)

벌써 몇 십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유치원생 시절.  그 당시 남자아이들의 장래희망은 군인, 경찰, 대통령 정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자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며,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건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 여기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무언가 만들어야 하고, 총과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그게 어울리는 모습이라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무언가 정적이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어울리다고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땐 책을 보는 것도 남자아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글을 쓴 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매일 일기 검사를 했지만, 딱히 쓸 내용이 없어 3줄을 쓰면 그나마 많이 썼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친구들과 공놀이를 했다. 참 재미있었다.”


“오늘은 강아지와 산책을 갔다.  참 즐거웠다.”


“오늘은 TV에서 영화를 봤다.  슈퍼맨이었다.  참 재미있었다.”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었던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특히 방학 때는 더 큰 곤욕이었지요.  40여 일 남짓한 방학 때 특별히 여행을 갈 일도 없는 시절이니, 그 일기를 매일 채워 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방학 마지막날 몰아서 일기를 쓰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친구들과 공놀이, 산책, TV 등등 더 쓸 내용도 없습니다.

독후감, 글짓기 대회는 더 어려운 주제였지요.  한 페이지의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부터 고민입니다.  그 당시 또래 친구들은 다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글을 쓰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마 작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드래곤볼” 만화책은 열심히 싸우고 이기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남자아이들 누구나 에네르기파를 쏘고, 셀과 싸우는 손오공 하나쯤 그려보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도 그림에 호질이 있는 친구들의 몫이지요.  전 그림에 소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만화를 그려봐야 고작 졸라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한 창 유행하던 일본 게임기는 무언가 환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부르곤 합니다.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의 이야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았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 그리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곤 하지요.  하지만 전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제가 그린 그 그림은 그저 추상적인 세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그림들 속에 작은 묘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요. 아마 영화 스타워즈의 첫 자막이었을 겁니다.


“아주 먼 옛날… 저 먼 은하계에서는…“


전 이 문구를 사랑합니다.  그 어떤 묘사보다 이 단어 하나로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논리적인 오류를 날려버리는 자막이었지요.  왜 광선검을 쓰고, 어떻게 물리법칙을 이겨낼까요? 단 한 문장이 설명해 줍니다.  그 시대, 그 세계는 그러하니까요.

할머니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며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내용을 덧붙입니다.  그 시절 호랑이는 왜 담배를 피웠는지 아무도 논리적으로 질문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말 한마디면 모두가 다 수긍을 합니다.

우린 문장의 힘을 때론 놓치곤 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 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곳은 그러하니까요.

그 단어, 문장 하나의 매력이 때론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바라본 아름다운 그것.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연필로 쓴 그 문장 하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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