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녹으며 검게 변하겠죠.
이미 1월을 다 써 버렸습니다. 지나간 달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새벽에 발권받은 아침이라는 이름의 승차권을 쥐고 눈을 떴습니다. 새벽에 잠시 내리던 눈은 그쳤습니다. 바람은 어제보다 조금 더 거칠게 불고 있지만, 오늘이 출발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는 비행기가 아닐 테니까요. 뭐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방을 엽니다. 오늘 하루 필요한 물품들을 가방 안에 넣습니다. 먼저, 이불을 개어 침대 끝에 둡니다. 고양이 모란이 파고들 수 있도록 조금 허술하게 개어두면 잠들기 전 이불속을 파고들어 자기 몸을 숨기고 있을 것입니다. 숨어 있지만, 누구나 보면 다 알 수 있는 그런 은신처로.
모란아~하고 부르면 숨어 있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쳐다볼 것입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으니 산책도 넣어두어야 합니다. 이제 막 세상의 모든 가로등이 꺼졌습니다.
가로등은 꺼지고 아침 햇살이 드러나지 않는 이 시간을 좋아합니다. 잠시 의자에 앉자 무릎 위로 뛰어오른 모란은 잠이 듭니다. 잠들고 있는 모란의 눈곱을 떼어줍니다. 이렇게 무릎에 앉아있을 때만 고분고분 귀찮은 집사의 손길을 견뎌냅니다.
겨울이 되자 가방 안에 넣을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흐린 날은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본 어린아이처럼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나의 행복을 바라듯이 아이는 둘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따스한 물로 눈사람이 녹지 않을 만큼 몸을 씻고 차가운 살갗으로 나와 다시 몸을 불립니다.
겨울이 되면 모든 사람이 눈사람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슬픈 기억으로 녹아내리고 두려움이나 걱정으로 녹아내리거나 권태로움으로 녹아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녹아내린 물을 다시 잘 보관해 두었다가 얼려서 실족하지 않도록 몸을 불리는 것이죠.
그 몸을 불리는 일은 너무 급속하게 물을 얼리는 것보다 수분이 가득한 상태가 되도록 천천히 기다려야 합니다. 더 견고하다는 것은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릴지도 모릅니다.
새벽은 밤의 휘장이 아직 벗겨지지 않았지만, 아침은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가방 안 제일 위로 커피 한 잔 분량의 작은 보온병을 세워둡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모란은 집 안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란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신비로운 건 자기 세계를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안이라는 세상의 모든 곳을 알고 있는 듯해 보이는 거죠. 책장 뒤의 먼지로 뒤덮인 세상부터 아무도 모르는 세세한 물건들과도 친밀한 교류를 바쁘게 하곤 합니다.
고양이 모란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정확히 말하면 계단이 시작되는 나무계단과 바닥 면의 직각 삼각형의 공간으로 기어들어 가 한참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그 직각 삼각형의 세계에는 딱히 무언가가 있을 턱이 없음에도 발톱 끝으로 쇠를 긁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리 와 이리 와 모란아~를 오천만 번 이상을 부르다 지쳐 그 직각 삼각형의 세계에 핸드폰 플래시 불빛을 비춰보았죠. 무릎을 꿇고 허리를 낮추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바라다보았어요. 벽 쪽 끝으로 은빛 원통형이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죠.
손을 뻗어 그 원통형의 물건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죠. 라벨을 정성 들여 뜯어낸 흔적으로 표면이 이상할 정도로 매끄럽습니다. 원통형의 물건을 통째로 흔들어봅니다. 진공 안을 흔들리며 내용물이 안쪽이 둔탁하게 닿습니다.
모란의 세계에서 깡통따개를 찾습니다.
딱히 겨울이 아니었던 적도 없었으니….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