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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는 웃음이 헤프지만

입이 무거운 자입니다.

by 적적

차가운 아침입니다. 이불속에서 건져낸 나는 급격하게 식어가며 촉촉한 물기를 잃어버립니다.

풀빵 기계에서 이제 막 꺼내 작은 선반 위의 붕어빵처럼 식어갑니다.


햇살이 보폭을 넓혀가며 걷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봅니다. 메마르고 더 차가운 월요일 아침은 이미 지쳐 있습니다.


큰 길가를 지나 몇 군데의 건널목을 건너 건물들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대도시의 산책길은 건물의 외벽을 답습하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건물의 외벽이 큰길과 마주치면 다른 기류의 바람과 만나 더 거세지며 오늘 기온을 미리 알려 주곤 합니다.


간혹 건물과 건물 사이가 서로의 그림자로 가려질 만큼 가까운 거리의 건널목 앞에 서서 빨간불을 기다립니다. 빨간불이 꺼질 즈음 한 여자가 검은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겉엔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롱패딩을 입고 단거리 선수처럼 뛰어오기 시작합니다.


기다리던 빨간불이 사라졌습니다.


자. 지금부터 이미 편집이 끝난 그녀를 보고 있습니다. 어떤 순간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려져서 그녀의 굵게 말려진 머리카락이 느리게 흩날리는 것을 먼저 발견합니다.


딕 포스버리가 떠올랐어요. 도마 선수들이 공중돌기하는 것을 보고 등 쪽으로 누운 채 막대를 넘는 배면 뛰기 방식을 고안해 냈다고 합니다. 도약하기 전 몸을 비틀어 2m 24cm를 넘었다는 그가 떠오른 건 그녀가 멀리뛰기의 스텝으로 배면 방식 이전 포즈를 취하며 가방이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정점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차갑고 메마른 바닥과 조우합니다. 그녀가 거짓말처럼 일어섭니다.

너무나 빨리 일어서서 잠시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필름의 일부가 삭제된 건 아닐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의심할 정도로 빨리 일어서버립니다.

오늘 아침의 유일한 목격자의 말은 법원에선 기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가방을 들고 잠시 서 있습니다. 영화 속 엑스트라처럼 그 장면을 지나쳐 사라져 버립니다.


그녀가 잠시 가방을 뒤적입니다. 물티슈 한 장을 꺼내 손바닥을 닦습니다.

그녀의 붉은 립스틱을 바른 –그 색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작은 입술 사이로 모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욕이 자동 거품 손소독제 아래 손을 밀어 넣은 것처럼 계속 나옵니다.

사거리가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으로 뒤덮여버립니다. 하얀색 롱패딩 아래로 피가 흘러내립니다.


그녀가 절룩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행인 1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올 한 해는 다신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토록 심하게 또다시 넘어질 순 없는 일입니다.


출근 잘했기를 바라며 청심환 한 알 드셨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목격자는 있지만, 그의 혀는 이미 부드러운 거품에 잘려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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