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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따라 읽어 봐

조금 덜 추워질 테니까.

by 적적

오래전 지나친 건강을 위해 금연을 삼가던 호랑이도 신년을 맞아 금연을 결심합니다. 은단과 사탕을 입에 달고 갑자기 찾아온 금단 증상으로 주변에선 차라리 그럴 거면 다시 담배를 피우라는 핀잔을 들을 무렵이었겠지.


유난히 눈꺼풀을 감았다가 뜨는 일을 느리게 하던 여자아이를 알게 되었거든. 그 여자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건 그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걸 바라보면 계속 호흡을 덩달아 놓치게 된다는 거였어. 마치 눈을 감고 뜨는 것을 일처럼 느끼게 하는 그런 여자였어.


눈을 깜빡이는 게 일이라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건지 발효를 기점으로 표면이 부글거리며 지상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는지. 손끝이 찌릿찌릿하게 느껴지는 밤이었죠. 나뭇가지 눈동자가 바라보던 흰자위가 나를 바라다보고 있었어요.

달은 가장 추운 곳을 바라보고 있었나 봐



풋-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입니다.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직 익을 기색도 떠날 생각도 없는 봄을 기다리느니 차가운 바람을 맞아야겠다며 아침 산책을 다녀옵니다.


풋복숭아는 어릴 때부터 혼자 먹었습니다. 신도 기억하지 못할 작은 사내아이가 학교 뒷문으로 달려갑니다. 아마도 신발주머니를 신나게 돌리며 추진력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바구니에서 가장 연둣빛 복숭아를 세 알 삽니다. 입고 있던 옷을 쭈욱 늘려 받습니다. 신발주머니를 팔에 걸치고 수돗가에 가서 씻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먼 길을 찾아 골목마다, 교회로 오르는 가장 긴 계단을, 산길을 돌고 돌아 복숭아 세 알을 다 먹을 동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지 않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걱정하기도 하셨구요 그해 가을엔 연두이며 유난히 뻣뻣한 식감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아오리사과를 얻어다 먹이곤 하셨습니다. 봄에 풋복숭아 세 알, 늦여름에 아오리사과 한 알.


입춘이 지나면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게 추워진다고 합니다. 우리 그 추위와 강도처럼 밀려들어 올봄 사이를 풋봄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지금 가만히 입술을 움직여 ‘풋-보옴’이라고 발음해 봅시다.

처음 발음해 보는 다른 나라 말처럼 말이죠.


풋봄의 하루가 길기만 한 건 자도 자도 잠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자도 자도 풋잠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파의 아침.

손끝이 연두롭고 떫은 상태입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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