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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이 있잖아요.

떠오르거나 가라앉을 자유가 있는.

by 적적

산이 검게 거기 있어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시간이기도 하죠. 저 멀리 있는 산이 거대한 등뼈를 일으키며 산이 아닌 공룡처럼 몸을 일으켜 날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죠.

오늘 같은 날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새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어두움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건너편 건물의 비상구를 알리는 불빛은 이 시간이면 더욱더 빛이나 푸른 보석 같습니다.

보라색 미역처럼 흔들리며 어둠 속을 느리게 걷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불빛이 가장 차가운 시간입니다.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이 겨울날들에게 묵념을 합니다. 고양이 모란이 오줌을 누고 모래를 덮은 뒤 나오며 앞발로 발판을 긁습니다. 서늘해진 발바닥을 디뎌봅니다. 오늘 처음 신을 양말을 고릅니다. 헐렁해진 발목이 오늘 하루의 느슨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을 엿보던 고양이 모란이 의자에 앉은 사내의 무릎에 뛰어올라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머리를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고 만지기를 명령합니다.


아직 데워지지 않은 공기를 마십니다. 데워지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얼핏 뜨거운 공기를 내뱉습니다. 체온보다 낮은 공기가 입에서 하얗게 부서져 바로 사라집니다.


24시간 불이 켜진 국숫집 앞에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해야 하는 두 여자가 잠에서 도망치기 위해 혹은 잠시라도 더 깨어있기를 희망하며 점장의 가당찮은 애교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맞장구를 칩니다.


햇살이 전주를 기다립니다. 3, 2, 1 다른 색 불이 켜지고 정확한 박자에 첫 소절을 부릅니다.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만지면 길게 목을 빼는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며 내리쬐고 있습니다.


느린 기울기로 기울어지는 메트로놈처럼 음악이 흐릅니다. 젖은 머리를 말립니다. 수건 끝을 양손으로 잡고 거실 안의 공기를 튕겨냅니다. 마른 수건이 젖어들고 있습니다.


젖은 수건이 세탁기 속으로 날아들어 갑니다.


모란이 달려들기 전 출근해야겠습니다.


일어선 채로 머그잔의 바닥을 마주합니다.


새벽이 저물었습니다.

어릴 때 놀이공원에 가면 그 풍선을 꼭 사달라고 했어요.

작은 무게추가 달려서 날아가지 않도록 옆에 두고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풍선말이죠. 그 작은 추를 손에 쥐고 날아갈 걱정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풍선을 눈이 부시게 바라다보았어요


잠깐씩 놀이기구를 탈 땐 엄마에게 풍선을 맡겼죠.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릴 때도 놀이기구를 탈 때도 그 풍선을 바라다보았어요.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보고 나서 어둑해지는 시간이면 풍선도 힘이 빠지는 시간이 됐죠.

나는 줄을 잡아당겨 풍선에게 인사를 고하고 무게추를 잘라 하늘로 돌려보냈어요.


엄마는 저 멀리서 그런 나를 지켜봐 주셨죠.


무겁지 않아요.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가끔 나는 풍선을 쥐고 있나 아니면 풍선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다들 살면서 그런 풍선 하나씩 들고 다니잖아요.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건, 자식이건, 또 일이건 글을 쓰는 일이건.


무게추가 있는 풍선입니다.

떠나지 않고 그대 손에 쥐어져 있을, 한없이 하늘을 그리워할, 바람 속을 유영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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