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더라도
길가로 나섭니다. 쓰지 않던 옷에 붙어있던 모자까지 쓰고 스노우볼을 미친 듯이 흔들고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토록 흔들어놓은 것은 그것을 찍고 있는 나는
어제저녁 다*소에 갑니다. 롱패딩을 입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작은 꼬마 계집아이도 롱패딩을 입고 서로가 가족임을 선서라도 하듯이 돌아다닙니다.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매장 안은 아주 한산하기만 합니다. 건전지를 사서 나오는데 파티용품 파는 곳에 작은 계집아이가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대로 누워 있습니다.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어린 비폭력 주의자처럼 누워있습니다.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우린 간다고 이제 갈 거라고 하며 작은 계집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계속 갈 거라고 말하고 가지 않습니다.
작은 계집아이는 가끔 눈을 뜨고 젊은 남자와 여자를 쳐다보다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리곤 날개가 달린 요정 옷을 젊은 남자가 꺼내 들자 천천히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씨익 웃습니다. 계집아이가 포장을 벗기려 하자 젊은 여자가 포장을 낚아채 계산대로 가져갑니다.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남자가 한숨 쉬는 표정을 짓습니다.
젊은 여자에게로 달려간 아이가 기다리고 서자 젊은 여자가 포장을 벗겨내고 롱패딩 위로 요정 날개를 펴서 어깨에 둘러 팔을 빼내곤 매장 안을 돌아다닙니다.
젊은 여자가 매장 안의 사람들에게 고개를 연신 숙이며 미안함을 표시합니다.
이거 날 수가 없네. 옷도 입어야 하나?
작은 계집아이가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젊은 남자가 아이를 따라 나갑니다. 젊은 여자가 커다란 종이봉투 가득히 물건을 담습니다.
연신 바닥을 차고 오르는 아이의 손을 잡은 남자가 여자의 종이 가방을 받아 듭니다.
아이가 계속 큰소리로 질문합니다.
이거 날 수가 없어 왜 이거 날 수가 없어
지쳐 있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다보며 웃습니다.
혼자서 한참 앞으로 뛰어나가며 날아오르려고 애쓰던 아이가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걷고 있는 젊은 남녀를 기다립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를 파고들어 손 하나씩 잡고 발을 들어 올립니다.
젊은 남자가 팔을 힘껏 들어 올립니다.
젊은 여자도 팔을 들어 올립니다.
분홍 날개는 아이의 몸에 비해 턱없이 작습니다. 볼이 통통한 계집아이가 날 수 있으려면 3m 이상 되는 날개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한겨울 밤의 요정치곤 의상 불량에 과체중입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더 이상 가지고 놀지도 않을 그 날개로 허공을 날았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느리게 달팽이처럼 느리게 따라가며 계집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관문을 열자 모란이 튀어 나갑니다. 불러도 신경도 안 씁니다. 현관문을 잡고 문을 닫을 거라고 문을 닫으면 다신 볼 수 없는 거라고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고 문에 매달려 얘기합니다.
이 바쁜 아침 동안 삼분을 허비하였습니다.
요구사항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