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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골송을 합니다

모란은 두 번째 고양이입니다.

by 적적

가장 추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추운 날들은 지난해 가장 더웠던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도 지난해 한계를 모르고 더웠던 어느 토요일이 떠오른 것은 오늘이 기억할 만큼 추운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힘들 때 어느 평온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는 말을 수긍케 하는 아침입니다.

고양이는 골골송을 합니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은 밖으로만 나가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뜨거운 공기 속 거칠게 부는 바람에서 비가 올 거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비라도 내리면 좋겠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의 기원으로 비가 옵니다. 새벽녘 열어 놓은 창문으로 버티컬이 부딪히는 소리와 등 껍질이 딱딱한 수천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창문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 원형에 가까운 물방울이 깨지는 소리, 빗방울이 뒤엉켜 사라지는 소리.

이런 폭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문득 생각을 꼬깃꼬깃 접어두려고 합니다. 생각은 빛보다 빠릅니다. 빗소리에 잠이 깨고 나자 더 이상 잠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잠시 머뭇거리다 포기할 수 없는 산책을 나서기 위해 집 안에 있는 가장 큰 우산을 선택합니다.


일단, 신발이 젖을 동안 걷기로 합니다. 비 오는 아침에 신는 신발은 버려지기 직전의 신발이 배역을 맡게 됩니다. 빗방울이 바닥을 차고 올라 튀어 오릅니다. 신발이 조금씩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걸어 다니는 식물처럼 신발이 젖고 발이 젖어들며 몸속의 사라진 물관처럼 빗물을 빨아올립니다. 온몸이 아래로부터 위로 젖어듭니다. 몇 년 전까지 우산을 접고 비를 잠시 맞기도 하였는데, 오늘 비는 잠시 생각만 하다 피식 웃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잠시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캔 커피를 고릅니다. 문에 달린 풍경 소리가 들리고 한 여자가 흠뻑 젖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우산은 이쪽에 있습니다.


그녀가 우산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비닐우산 하나를 골라 바쁘게 사라집니다. 우산을 쓴다는 것은 더 이상 젖어드는 것을 미리 예방해 주는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뜨거운 차를 마십니다.

안경이 뿌연 수증기로 차오릅니다. 창가엔 빗줄기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온종일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처럼 뿌연 거리를 바라다볼 것입니다.


어항 속에는 작은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어떤 물고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오래전 키웠던 네온테트라 정도면 되겠군요. 온종일 어항 속을 헤엄치며 어항 밖을 바라다봅니다. 간혹 어항을 톡톡 건드리는 소리에 반응하거나 사료를 물에 떨어뜨리면 모여드는 물고기. 어쩌면 어항밖엔 전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를.


집안은 거대한 어항입니다.

어항 속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곳을 알고 있어서 이 지루한 어항 속에서 마른 사료가 있다는 것을 무척 고마워하는지도 모릅니다. 물을 마시려면 그냥 입가를 혀를 핥는다든지, 혹은 길게 하품을 하면 됩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포트에 물을 끓입니다.


잠시 후면 어항 밖으로 나가 다른 어항을 향해 가야 합니다.


어항에서 어항으로 가는 동안 모두….



어떤 고양이는 죽기 직전에도 골골송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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