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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고를 기다리며.

봄은 품절, 결재는 취소된 줄도 모르고

by 적적

입춘이 지나자 몸뚱이는 점점 더 추위에 예민해진 것 같아요. 알람이 울리면 5분 뒤로 다시 맞춘 뒤 다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버립니다. 그 5분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눈을 뜨면 눈꺼풀에 잔뜩 꿀 한 숟가락이 흘러내립니다. 가로등이 조금 더 빨리 꺼지고 있습니다.


아침 산책을 다녀와야 꺼지던 가로등은 이제 아침 산책하러 나갈 즈음엔 너무 늦게 공연장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차단을 당한 것처럼 난감해집니다. 내일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날 자신도 없는데 말이죠.


산책하러 나갑니다. 검은색 오리털 파카를 입습니다. 비도 내린 적 없는 바닥이 아직 젖어있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낮은 기온이 느껴집니다. 목에 걸고 나온 목도리를 둘둘 말고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넣고 걷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주문한 봄은 결재가 취소되어 있습니다. 다음 날 품절된 상품을 재신청 할 수 있다는 문구를 바라다보며 잠시 망설입니다.

아직 옷장 속의 두꺼운 코트며 스웨터를 한참 더 입어야 합니다. 게다가 주소오류로 인해 한참 동안 통화를 하고 주소지를 변경해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마음속의 봄은 여름이 다되어서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춥더니 또 바로 덥구나 할테구요.


갑자기 급습한 우울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우울이 계속되면 먼지들이 더 크게 보이곤 합니다. 고양이 털은 더 말할 것도 없구요.


핸드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입니다. 고양이 모란이 청소기 소리에 짜증을 부립니다. 생각 같아선 모란을 벽 쪽으로 몰아붙여 몸수색하듯이 청소기로 털을 빨아들이고 싶어지지만.


악마도 울고 갈 귀여움으로 잠시 의자에 앉아있는 무릎 위로 날아오르듯 뛰어올라 결국 청소기를 내려놓고 모란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먼지들도 신데렐라처럼 본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흐린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햇살은 없고 흰색 물감에 검은색 물감을 조금 개어 물을 듬뿍 품은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풍경은 무겁습니다.


머리가 다 말랐지만 지푸라기처럼 이내 축 처져버립니다. 손으로 쓱쓱 모양을 잡아보지만,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긴 맘에 드는 머리를 하려면 오늘은 출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에 하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검색창에 하품에 관련된 질병을 찾아볼 만큼 심각하게 하품이 났습니다. 이렇게 하품이 나면 업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더 쉬며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며 점심 식사 후에 얘기하였더니


자네의 마음을 알 것 같네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얼마나 괴로웠겠나? 하품을 원치 않는다며 내 서랍에 반짇고리를 가져오게 입술을 꿰매줄 테니 우리 아주 잠시 기다려보자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 스타일이 맘에 안 드는 문제도 이미 예전에 명쾌한 답변을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알고 있다네 이리 앉게나…. 머리를 모두 밀어버리는 거라네 머리카락이 없으니 머리 스타일을 신경 쓸 일이 없다네. 어떠한가? 머리를 통째로 자르고 싶다면 그 부분도 고려해보겠네

라고.


갑니다. 가요 출근한다고요!!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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