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부스러기가 떨어집니다.
작은 소리들이 들립니다. 모란이 사료를 아작아작 씹는 소리, 바로 옆 머그잔-그 좁은 잔에 머리를 들이밀고 마시는 걸 즐겨하므로-에 머리를 넣고 물을 핥아가며 컵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과 이제는 어깨가 넓어져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아차린 안타까움이 만들어내는 물을 삼키는 소리, 그리고 거실을 가로질러 졸졸졸 쉬야를 하고 모래를 덮는 소리까지.
백열등이 허리를 펴고 잠시 천장을 바라다보다 다시 허리를 숙여 빛을 내는데 열중하는 소리, 물건 값을 깎는지 아니면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지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어둠이 한 올 한 올 내리며 서로의 모서리를 맞추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모서리 끝이 살짝 부서지는 소리, 지상의 모든 어둠이 다 제자리를 찾고 비로소 밤이 완성됐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소리, 그리고 건널목을 건널 때 바라다본 하늘의 달과 별.
별 하나가 손을 죔죔 거리며 반짝이고 야간 근무를 하느라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된 달이 별에게 다가가 손을 가만히 감싸던 밤.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내가 새벽을 휩쓸고 다니며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던 방법들.
나는 큰 얼음에서 쪼개져 떠내려가는,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작아지는 얼음조각에 탄 무리에서 가장 아둔한 펭귄 같다(...) 다른 얼음조각에 닿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얼음을 꼭 붙여, 녹였다가 얼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랭이떡 같은 모양으로 넓어진 얼음 위에서 누군가와 함께 흘러가면 좋으련만. (54p)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김화진
오래전 아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나이지리아 사람은 가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다들 가을 옷차림으로 만났었는데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그 사람만 유독 반팔에 경량 패딩 차림으로 곁에 앉아 형아를 연발하였습니다.
형이라고 불리는 것과 형아라고 불리는 것은 찹쌀 꽈배기에 설탕을 뿌려 먹느냐 그냥 먹느냐의 차이만큼이나 결이 다른 것이어서 쉽게 존댓말을 풀지 않는 저도 헤어질 때쯤 반말을 해가며 서로 연락처를 나누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런 약속은 상대방의 적극성이 얼마나 발현되는가에 따라 약속의 결정이 변경되곤 합니다.
그해 가을이 지나고 겨울 동안 그 친구를 여러 번 만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친구는 늘 만나지 않고 서는 못 견딜 제안으로-대부분 근처에 왔다가 생각이 났다, 혹은 어느 매장 앞인데 길을 잃었다 등등-적극성은 나이지리아 대표급이었습니다.
게다가 본인 나라에서 부르는 이름 대신 아주 촌스럽고 정겹기도 하며 누가 저런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를 춘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친구는 그 이름을 아주 맘에 들어했습니다. 어디서든 그 이름을 부르고 돌아보는 그. 친구를 아주 희한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그해 겨울에 그 친구는 몇 번의 매서운 겨울을 지내오며 경이로운 한국인들을 추앙했습니다.
그 친구의 겨울 이야기는 1차 대전, 2차 대전 그리고 월남전을 참전했던 이미 백골이 되었을 참전 군인처럼 파란만장했습니다. 춘동의 여름은 평온하였습니다. 여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춘동은 재작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침부터 더 차가울 예정입니다.
습도가 낮아 그늘진 곳은 상대적으로 엄청 시원하다는 아프리카의 여름을 슬리퍼를 끌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을 동생을 떠올려봅니다.
춘동아 형아는 이 겨울에도 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