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고여든 물, 봉긋이 차오를 때까지 한 번도 박차고 나간 적 없었다
가뭄이 길어질수록 해감되지 않은 조개처럼 모래만 질겅거린다 갈라진 입술이 사막의 골을 새기고 물컹한 혀는 한없이 미끄러져 마지막 물웅덩이를 핥는다
파충류 눈꺼풀은 옆으로 닫힌다 눈물도 없이 과거는 지그시 속을 도려내 툭, 내던져 버리는 것 혹은 중지손가락 하나 세우는 것 그 손가락마저 바람에 스쳐 삭아버리고 만다
침묵은 불길처럼 타오르거나 난간 끝에서 울부짖는 짐승이 된다 밤의 울음을 목구멍 깊이 삼키고 한참을 기다린다 허공에 날을 세운 비명이 천천히, 천천히 부서질 때까지
벼는 바람의 노다
뒤엉킨 근육들은 바람을 거듭 짓밟고 잠시 숨을 고른 틈, 배를 뒤로 모는 풀잎 하나 그 사이로 눈이 갇힌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마다 흩어진 낱알들이 발목을 휘감고 가만히 뜯어보면 우리는 언제나 허기진 얼굴이다
밥알을 짓이겨 끈적한 밥풀이 되는 노동 쉽게 굳어버리는 밥풀 매트리스 손톱이 갈라질 때까지 뜯어내야 하는 삶은 결국, 점성의 문제
이마에 스민 땀이 이마를 넘어 흐른다 그마저도 천천히 마를 때까지
괄호밖에서 대사는
모두 괄호 위를 폴짝 뛰어넘으며 자신을 증명하려 했지만
무대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대사의 마지막 모음이 검은 재로 내려앉는다
지문이 겁간한 사생아였어 나는 늘 지문 안에서 태어나 지문 바깥에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