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눈을 뜰 수 없었다.
활은 현을 떠난 적 없고, 슬픔은 가볍게
튕겨 오르며 기댈 곳을 찾다가
나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밤이 짙어질수록 손목은 기울어지고,
이 세계는 연주하는 활의 음률을 따라 휘어졌다.
우리는 등 뒤로 넘어지는 악보처럼
무너져 내렸다.
당신은 거대한 가방을 짊어진 채 서 있었다.
침묵 속에서, 어깨 끈을 더 단단히 조여 주었다.
기울어진 밤의 해부도에서,
몸을 따라 지도를 그렸다.
눈물의 경구가 음표처럼 뜯기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검은 피아노 건반처럼 나열된 새벽,
활이 공기를 가를 때
반으로 접혔다.
밤의 살점을 베어내는 활 끝,
숨을 삼키는 장례행렬,
연주하는 한 악장이 끝나고
누구도 박수를 치지 못했다.
가로등 꺼진다.
밤의 경계를 따라서
악보가 찢기듯 사라지는 발걸음.
활로 현을 켰다가, 끊는다.
가장 밝은 당신을 본 것이다.
마지막 음이 가라앉고
반쯤 열린 밤 속으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