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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얼굴부터 사라진다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머리를 박는다
스티로폼 벽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고
물속을 들여다본다

내 얼굴 말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상추는 이마로 흙을 민다

다 자라기 전까지
아무도 물지 않는다
그건 씹히기 좋은 시점에만 존재한다는 뜻

나는 그 말이 오래 남는다


무릎으로 걷는 사람들
천장을 쳐다보지 않는다
기지개는 낡은 몸이 꺼내는 오해



눈이 자주 시리고
방은 자꾸 작아진다

연탄재 먼지가 떠다닌다

숨을 들이마시면
허파 대신 방바닥이 들어온다



누워 있는 시간이

나를 눌러
몸보다 얼굴이 먼저 퍼진다



머리를 박고 있는 게
기도인지 굴복인지 알 수 없을 때
뒷덜미에 흙이 떨어진다



전화는 울리지 않는다
그는 온 적 없고

문은 열려 있었다
들어온 건 바람



밤마다 상추는

불을 끈 채 자란다
나는


빛이 꺼진 후에야 바닥을 확인한다

그럴 때



너는 나를 너무 깊게 뜯어낸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다
손 대신 이마로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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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