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잇몸시편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태어난 아이들 입속에

입김 빠진 플라스틱 상어가

한 마리씩 뒤집혀 있다



입안은 조금 헐거웠다

빠진 자리에 혀끝이 자꾸 닿았고

살이 부풀었다

피는 얇은 필름처럼

혀 밑에서 말없이 접혔다



나는 이를 흔드는 걸 좋아했다

무릎 밑이 간질거리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잇몸 아래서 끊어졌다

그이는 말하지 않았다



실을 묶고 실을 당기고

숨을 참았다 잇몸은 붉었고

나는 아프지 않은 얼굴로

아프기를 기다렸다

이빨은 없다

있었다면

지워졌다고 말해야 한다



투명한 주사기

깨진 바늘

유년은 혀 밑에서

잠이 되었다

치과는 사라졌고

의자에 눌린 땀자국만 남았다

검진표 뒷면엔

누군가의 구강 구조



초콜릿은 꿈속으로 빨려가고

사랑은

치아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실로 묶는다

밤처럼 가늘고 긴

나일론

연인들은 서로의 이를 뽑으며

신호를 주고받았다



사랑은 통증이 아니라

그 통증을 기억하는

혓바닥의 습관

입속은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가장 희고 부드러운 별 하나를 물고 있었다

그이는 내 혀를 피했고

나는 그이의 실을 따라갔다

입맞춤은

잇몸 밑의 혈관 몇 줄기

살짝 비트는 것으로 충분했다



치아는 떨어졌고

작은 유리병이

그 사실을 기록했다


딸각—

소리는 없었고

우리는 동시에 눈을 감았다

잇몸은

기억이 지나간 자리에

피 대신

무언가를 심고 있었다

쌀알처럼 흰 말들


혀끝에 닿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칠째, 그 자리엔

말이 자라지 않았다

아니,

자랐는데

자라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잇몸은 침묵했고

새 치아는

침묵보다 단단한 방향으로

삐져나왔다

사랑은

정확히 어긋나는 쪽으로

자라는 법

그이의 손,



이제는 침대 밑 그림자 속에

가장 붉은 공간을

다시 만지려 한다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29화비누와 별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