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함으로 부서짐이 더 아름다운 이유
유리잔은 깨질 때 가장 완벽한 소리를 낸다.
그 짧은 파열음은 어떤 악기보다도 순수하고, 어떤 목소리보다도 투명하다. 깨진 유리는 흩어지면서 빛을 받아 흩뿌리고, 그 순간만큼은 단단함보다 깨진 순간이 더 아름다워진다. 인간도 그렇다. 부서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스스로의 결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매끈하게 가려져 있던 표면이, 충격 앞에서야 본래의 모양을 되찾는다.
새벽은 그런 취성을 닮았다. 겨울 새벽, 자동문이 닫히며 내뿜는 냉기, 인도의 얼음장 같은 공기, 버스 정류장의 얇은 플라스틱 벤치 위에서 균열이 나는 소리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숨결이 하얗게 터지며 공중에서 부서진다. 이 도시의 모든 새벽은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투명하고, 동시에 너무 얇다. 손끝으로 건드리면 금이 갈 것만 같은.
사람들은 흔히 단단해지길 원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버텨내기 위해, 이겨내기 위해. 그러나 단단함은 언제나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내포한다. 철이 단단할수록 녹이 스는 속도는 빠르다. 유리처럼 완벽할수록 깨질 때는 산산이 흩어진다. 강함의 끝은 늘 부서짐이다. 취성은 약함이 아니라, 형태를 유지하려는 존재의 숙명이다.
커피잔을 들고 있을 때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도는 생각보다 섬세하다. 그 미묘한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잔을 조금 더 세게 쥐면 온기를 느끼려 할수록, 힘이 들어가고 결국은 금이 간다. 처음엔 거의 보이지 않던 균열이 시간이 지나면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때는 이미 늦다. 온기를 나누던 손끝은 어느새 차가운 파편을 쥐고 있다.
취성은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결함이다. 강철처럼 버티는 대신, 유리처럼 부서지며 존재를 증명한다. 눈물이 흘러내릴 때, 목소리가 떨릴 때, 그건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명이다. 강한 척할 때보다, 무너질 때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난다.
오래된 아파트의 벽에는 가느다란 금이 자란다. 처음에는 단순한 균열이었지만, 비가 올 때마다 그 틈으로 습기가 스며들고, 어느 날엔 벽지가 미세하게 들뜬다. 그 틈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된다. 완벽하게 유지되는 것보다,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유지보다 붕괴가 더 정직하다.
낡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빛은 온도를 가진다. 먼지가 떠다니며 천천히 회전하고, 그 빛의 결이 공기를 가른다. 그 순간, 세계는 조용히 금이 간다. 시간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서서히 깨뜨린다. 생은 깨지지 않으려 애쓰는 일의 연속이 아니라, 어떻게 부서질지를 배우는 일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그 취성을 숨기기 위해 웃는다. 어떤 사람은 그 깨지는 순간을 감추기 위해 차가운 말을 고른다. 그러나 표면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안쪽에서는 늘 미세한 파열음이 난다. 그것은 들리지 않는 울음이자,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다.
밤의 골목길, 불이 꺼진 편의점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난다. 그 그림자는 포장지처럼 얇고, 길바닥의 물기 위에서 쉽게 흔들린다. 그 불안정한 선은 취성의 초상이다. 그림자는 깨질 수 없지만, 늘 흔들리며 존재한다.
모래사장 위를 걸을 때 발밑에서 들리는 사각거림은 작고, 부서지는 소리다. 그 미세한 소리가 귓속에서 진동하며 세계의 무게를 가볍게 버틴다. 모래는 부서짐의 끝에 있는 물질이다. 한때는 단단한 암석이었으나, 오랜 시간의 마찰 끝에 가루로 남았다. 그 부서짐 덕분에 누군가는 그 위를 걷고, 누군가는 거기에 눕는다. 부서짐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지속이다.
서랍 속의 유리구슬은 빛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빛을 잃지 않는 대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부서질 수밖에 없다. 존재란 결국 조금씩 균열을 허용하는 일이다. 완벽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창문 너머로 본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속도로 깨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별의 잔해 위를 걷고, 누군가는 잊힌 이름의 그림자를 밟는다. 표정은 무표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균열의 형태가 다 다르다. 어떤 눈빛은 이미 금이 가 있고, 어떤 입술은 막 파열되려는 긴장으로 굳어 있다. 세상은 그렇게 부서지는 사람들의 합으로 구성된다.
비가 내릴 때 유리창 위로 흐르는 물방울들은 서로 닿았다가 곧 흩어진다. 잠시 합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각자의 경로로 떨어진다. 취성은 관계의 운명과 닮았다. 사람과 사람은 결코 완전히 섞이지 못한다. 잠시의 접촉 후 다시 흩어지며, 그 흩어짐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증거다.
어느 날 거울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게 된다. 반사된 얼굴도 사실은 균열의 집합이라는 걸. 피부의 결, 눈가의 미세한 주름, 입술의 건조함도 깨지지 않기 위해 버텨온 세월의 흔적이다. 거울 속 얼굴은 매끄럽지 않다. 그 거칠음이야말로 진짜 생의 질감이다.
깨짐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완전함에서 오지 않는다. 균열이 있는 사물, 금이 간 목소리, 눈물로 젖은 편지, 오래된 사진의 바랜 색감. 모두 다 부서짐의 증거이며, 동시에 존재의 기록이다. 세상은 완전한 것보다 금이 간 것들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새벽의 첫 지하철 문이 열릴 때, 차가운 공기 속으로 사람들이 흘러들어온다. 그들의 어깨, 손끝, 눈동자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다. 누군가는 막 잠에서 깨어났고, 누군가는 밤새 부서졌다. 서로의 취성을 모른 채 스치고, 닿고, 다시 흩어진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리처럼 불안하게 반짝인다.
취성은 인간의 본질이다. 단단함은 환상이고, 부서짐은 실체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언젠가 깨질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편들이 빛을 반사하며 공중에 흩날린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모든 깨짐은,
제 형태로 남지 못한 것들의 마지막 반짝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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