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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핑크 Jun 23. 2019

모든 것은 딩크로부터 시작됐다

본격 비주류 인생길 걷기_고기 안먹는 사람

남편과 둘이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고기 안 먹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베지테리안의 종류엔 꽤 여러 단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붉은 고기와 가금류를 안 먹고 대신 해산물과 계란, 우유까지만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이 되기로 했다. 


얼마 전 가족 모임이 있어 사전에 단체 톡방에서 어디서 만날지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우리 부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됐으니 고기는 빼고 우리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졸랐더니 엄마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뭐? 풀만 먹고 산다고? 너희들이 딩크도 모자라 본격 비주류 인생길을 걷기로 작정을 했구나! 어휴, 사람들이 까탈스럽다고 안 해?" 

하며 한숨을 푹 쉬셨다. 


엄마의 마음이 당연히 이해가 갔다. 부모님은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뭐든지 복스럽게 골고루 잘 먹으면서 무난하게 지내길 바라셨을 것이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무난하게'의 길에서 점점 벗어나는 딸의 인생. 


건강에 대한 이슈는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한 뒤 늘 우리의 관심사였다. 우리는 평생 우리 둘만을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한 사람이 아프거나, 또는 둘 다 아프거나 그런 일을 상상하면 정말 난감하고 막막했다. 물론 100세 시대, 평생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 언젠가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날이 분명 우리에게도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날이 오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예전에는 "먹고 싶은 거 꾹꾹 참으며 100살까지 사느니 그냥 맘 편히 먹으며 70살까지만 살거야!" 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지금 우리에겐 최대한 스스로 오래오래 간수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딩크가 우리 삶에 미친 또 하나의 영향이다. 


그럼 어떻게 먹어야 건강할까. 둘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채소를 많이 먹으면 몸에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누군가는 단백질 공급이 중요하니 붉은 고기를 나이가 들수록 꼭 챙겨먹어야 한다고 하고 또 한 때는 '저탄고지'의 식단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음식을 '적당히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완전 채식인 비건을 강추하는 넷플릭스의 다큐 '내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를 보고 혹했다가, 여러 의견을 균형있게 참고해야 할 것 같아서 채식의 위험성을 다룬 MBC다큐 스페셜 '채식의 함정'도 함께 찾아 봤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추천하는 책 '단식모방다이어트'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또 채식을 비판하는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 책도 읽어 봤다. 


이렇게 여러 다큐와 책과 검색 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면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는 것이었다. 1주일에 한 번씩 치킨을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닭고기를 포기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어차피 치킨을 먹고 나면 속이 너무 불편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니 이참에 깨끗히 이별하기로 했다. 


한층 간소해진 밥상


심지어 만두까지 빚었다


이렇게 고기를 전혀 안 먹는 생활을 한지 이제 2달 정도 되었다. 친구들이나 가족 모임을 할 때 조금 눈치가 보이는 것 말고는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오히려 채식 인구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친구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곧 응원을 보내주었다. 엄마는 아직도 밥상에서 고기를 멀리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절래절래 하시지만.  


고기는 '이제 못 먹는 것' 이라고 못을 박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 오히려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집 밥을 많이 먹게 되면서 식비가 파격적으로 줄었고 남편과 나 둘 다 먹고 싶은만큼 마음껏 먹는데도 살이 조금씩 빠졌다. 몸도 가볍고 예전에 비해 더 나빠진 부분은 없다.  아직까진 긍정적인 효과가 더 커서 계속 지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 계속 채식 식습관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채식 레시피를 공유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채식 음식 만드는 법을 기록하고 또 나누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wxfPgGW_XQ8kx4BknNjjZw

지금 우리의 식단 방침이 영원 불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의 위대한 법칙도 시간이 지나며 보완되고 수정되고 때론 완전히 뒤집히는데 매일 먹는 소소한 식단에 불변의 진리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다만 하루하루 내 몸에 넣는 물질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관심을 가지며 변화를 관찰하는 일. 그것이 일단 지금 미래의 불안과 현재의 만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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