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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Dec 28. 2023

기다려라, 견뎌라, 쌓아라

— 적극적 수동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이해할 첫 번째 사실은 사람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할 수 없고, 말해 알 것 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법이다.

다만 사람은 깨울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난다.

어떻게 태어나는가.

관계에 의해 태어난다.


뉴런과 뉴런은 독립된 세포이고, 이 독자적인 세포들은 다른 세포와 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하나도 다른 어느 하나에 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전달물질을 교환하는 전기적 신호를 통해 매순간 새롭게 연결된다.

연결될 때마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이들은 독립됐고, 별볼일없다.

그러나 이어질 때,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따라, 이 한 번의 이어짐 이어짐 들이 단속(斷續), 즉 잇고 끊고 맺고 하기를 거듭하며 배열되는 수열(數列)의 조합(調合)은 하나하나가 ‘빛’처럼 현상(現象)한다, 현현(顯現)한다. 나는 약하고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관계가 의미를 낳는다.

이 우리는 나와 전혀 별개가 아니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 다르지 않다. 도리어 참된 나이다. 참나는 나를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나를 전부 끌어안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이기만 할 때 나는 외부로부터 소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확정되지 않고 불안정하다.


오늘 한 아이가 한 행동을 한다. 당신을 그것을 고칠 수 없다.

당신이 뭐라 하든, 심지어 아이가 그것을 또박또박 되뇌고 고개를 끄덕였어도 아이는 금세 같은 짓을 반복한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지금 발생한 것이 아니고, 오래전 잉태되고 꾸준히 형성돼서 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선한 의도를 가진 것도 알고, 당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도 안다. 다만 사람에 대한 이해를 보태자. 당신은 지금 아이를 고칠 수 없고, 아이가 다르게 행동할,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태도와 자세를 가질 관계의 그물을 자아갈 수 있다. 당신이 잣는 선들, 선의 엮임은 출렁이며 그 선들, 선형(線形)이 조합하는 가능한 것들 중에서 사건을 일으킨다.

아이에게 다른 충동을 심어 주어야 한다. 억압하는 대신. 물론 지금 당장 말하고, ‘알려’줄 수 있다. 다만 알려줄 뿐이다. 아이를 나무라거나 심판할 수 없다. 그 행동이 무언지 알려주고, 그 행동의 해석의 지평을 열어줄 뿐이다.


이 모든 걸 하는 데에는 아이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잘것없고 볼품없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 속에 펼쳐질 때, 약 80조 개의 세포가 독립한 생명이면서도 ‘나’라는 개체로 통합되어 온전히 자신을, 드높여 실현하듯이, 비로소 ‘나’이듯이, 역사적 존재로서, ‘참나’로 경험하고, 발견하고, 일어선다. 이 점점이 점멸하는 내가 이어져 선을 이루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 애니메이트(animate). 이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신은 미래의 이야기를 쓰는 거다. 지금 이야기가 틀린 줄을 알았다면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서 탈고할 때, 그것이 읽힐 때, 아이의 영혼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아이 자신이 자유롭게, 세뇌가 아니라 온전한 동의, 공감을 통하여 바로 그 행동을, 그러나 당신이 결코 상상한 적 없던 놀라운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어라. 그때까지 견디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여라. 쌓아라.

우연에 휘둘리지 말고, 우연을 부정하지도 말고

그러나 필연을 쌓아

강물은 그대로이고, 물살은 더 거센데

흔들리지 않는 바위를 두어라.

아이가 밟고 건너게 하라.

그 한 번이면 된다.

아이는 다른 땅으로 건너간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도록, 즐기도록


우리가 쌓는 것은

수면에서, 바로 그 순간에서

드러날 것이다.


기다리고, 견디고, 쌓기.

그래서


사람에게 행하는 모든 행동은, 유일하게

교육적이고, 가능한 행동은


사랑이다.

부지런하고, 묵묵하게 타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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