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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문진 Apr 03. 2024

임시보호

상호대차한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도서관으로 가면서 재밌는 트위터를 발견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게 중요해요. 2년간 대출기록이 없는 책은 보존서가로 옮겨지고 그 다음 폐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읽지 않더라도 책을 빌려 읽읍시다. 임시보호라고 생각하세요. 반려동물만 가능한게 아닙니다.]


 직원에게 책을 건네받고 800번 대 서기로 가서 관심도서 목록에 있던 책 번호를 살피던 중이었다. 어디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발끝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귀를 통해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혹시 서가 뒤에 숨은 사람이 있나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이어폰의 볼륨을 줄이고 조용히 숨을 참고 가만히 서있었다. 

“…. 줘….” 

“내줘….” 

“꺼내줘….” 

나는 핸드폰을 켜고 도서관 불만 사항 게시판을 살펴봤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본인보다 키가 작은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들렸는데 꼭 3살짜리 조카가 다리 부근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몸을 살짝 낮춰 허리를 굽혔다. 

“…내줘요.” 

말소리가 더 들려왔다.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았더니 “나 좀 꺼내줘”라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제는 소리의 온상이 궁금해져 어떤 놈이 책에다 음성카드를 숨겨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책을 살펴서 만지기 시작했고, 맨 아랫줄로 시야를 돌려 책을 한 권씩 살피던 중이었다. 

“아 따가워” 

책에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꺼내서 펼쳐보니 이 책은 언제 펼쳐졌었는지도 모르게 표지에 먼지가 쌓인 것과 달리 내지는 종이가 조금 바랜 것 빼고는 깨끗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책을 들고 소독기에 넣어 소독을 한 뒤 집으로 들고 왔다. 그럼 그렇지 책이 말할 리가 없지,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책상 위에 내버려둔 채로 며칠이 지났을까 집에 혼자 있는데 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무서워졌다.


*


“선생님 2주 전에 약 용량 올리고서 제가 이명이 생긴 것 같은데 이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좀 이상해요”

“그렇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전에 밤새도록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 잠도 못 자고 짜증 낸 적이 있는데 그게 이명이란걸 알았거든요. 이번엔 사이렌은 아니고…. 도서관이었는데”

“어떤 소리를 들으셨어요?”

“엄청 조용한데 누가 자꾸 속삭이는 거예요. 그래서 둘러봤는데 떠들고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책 빌리려고 서가에서 서성이는데 계속 말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이명인지 조현 증상이 오는 건지 무서워서 일단 나왔는데 밖에선 또 괜찮았어요. 그런데 집에서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와서 너무 무서웠어요”

“소리가 어떤 느낌으로 들렸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요?”

“붕붕 떠 있는 느낌처럼 들리는데 꼭 목욕탕 안에서 밖에 누가 날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물속에서 윙윙하고 바깥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해요.”


*


책이 내게 말을 건다는 게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진짜로 내가 미쳐가는 걸까, 내 마음의 소리를 착각하는 걸까. 하지만 집에 혼자 있으니 느릿느릿하던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고 또렷하고 과감하게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엔 꺼내달라는 말이었고, 그다음엔 데려가달라고 말했다. 지금은 펼쳐달라고 말을 걸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 나를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책이 살아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이게 무슨 SF소설도 아닌데. 아무리 내가 근래에 책을 많이 읽었다지만 어디서도 책들이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이야기를 본 적은 없었는데. 나는 공포와 동시에 이걸 소재로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노트북을 켜고 급하게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호대차한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도서관으로 가면서 재밌는 트위터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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