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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월 Feb 28. 2024

#06. 바닥은 포기하는 걸로

바닥은, 포기하기로 했다. 뭐 그런데 무슨 셀프 인테리어 이야기냐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바닥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힘들어서. 두번째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거의 끝 챕터에 와서야 첫 화두로 던진 집을 사야했던 이유를 언급해보자면, 절대 인테리어를 연습해보려고 한 것도 아니고, 돈이 넘쳐나서 집을 샀던 것도 아니었다. 남들처럼 있는 돈 없는 돈 영혼까지 끌어모은 다음에 은행에서 대출을 가득 내서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이 동네에서 상당히 오래된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렴했던 집을.


22세기를 꿈꾸는 지금 시대에 쌍팔년도에서나 썼을 법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결혼하면서 누구는 큰 강이 보이는 집을 해오고 누구는 으리으리한 혼수를 해오는 그런 집 자녀들은 아니었다. 소소하게 결혼하겠다고 양가에 인사드리고, 혼수나 집을 해주시는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결혼식도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른들은 흔쾌히 승낙하셨고, 지은지 20년이 넘은 18평 아파트 월세로 신혼 살림을 차렸다. 아이는 태어났고, 아랫집은 끽연가 집안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랫집에 줬을 층간 소음과 아랫집에서 심심찮게 올라오는 담배 연기와 맞바꾼 싼 아파트였다.  


운이 좋았던지,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전세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은행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집이 조금 더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집 아이는 집에서 뛰었고, 새로 생긴 아랫집 이웃분은 심심찮게 베란다와 화장실로 담배 연기를 올려보냈다. 그 와중에 지인분이신 집 주인 분은 이따금씩 생긴 집 문제로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올때면, 어디에 낙서가 되었는지, 곰팡이는 어떤지, 심지어 현관 청소 상태까지 말을 얹고 나가셨다.


“너희들 이사가기 전에 집을 내놓아서 보여줘야 하는데, 현관이 더러우면 들어오다가 만다!”

돈과 관련된 큰 일은 역시 아는 사람을 통하면 안된다는 정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위해 아랫집을 위해 더 좋은 시공을 하려고 해도, ‘남의 집’이라는 세 글자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제약했다.


아이가 더 커 가면서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 대해 꾸짖는 일이 잦아졌다. 상상 속 우리 아이는 벽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창의력을 키워나가는 아이였는데, 그런 일을 앞장 서서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 우리 집이 필요했다.


새 집을 사게 되고, 계약을 하고 모자란 총알을 몸으로 때우며 층간 소음에 바닥을 고민했다. 두께를 높였다. 층간 소음 방지 매트만 찾아보았다. 가격이 만만찮았지만, 슬쩍 시공 비용을 전문 업체에 견적을 냈더니 결국 사람 하는 비용 차액 뿐이었다. 정말 극적인 제품을 극적으로 시공해야하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내가 인터넷 쇼핑에서 본 제품 가격에 인건비 20~30정도 업 된 견적이 나왔다. 크게 30정도 총알을 아끼면서 시간과 노력과 체력을 비축해볼까 고민하는 사이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닥 얼마나 하는지 알아봐서 얘기해. 카드 줄게.”

장모님 만세!


바닥 업체는 이미 이 바닥(?) 일을 얼마나 오래 했겠는가. 어느 아파트 몇동 이걸로 하는데 얼만가요? 현장을 방문할 일도 없이 견적이 앉은자리에서 뚝딱나왔다. 세군데를 알아봤는데 비슷한 디자인과 같은 두께에서 가격차이가 20만원 정도 있었다. 뭐 고민할게 뭐 있겠는가. 그냥 제일 저렴한데 가는거지!

장모님께 말씀드리고 드라이브도 할 겸 같이 업체를 찾아왔다. 결재를 마치면서 시공 일정도 마무리 되었다. 이사 전전날. 이제 진짜 인테리어가 끝이 났다.


시간은 뚝딱 흘러 바닥하는 날. 시작 전에 작업하실 분들을 만났더니 잔소리로 시작되었다.

“바닥 퍼티 누가했나요?”

“제가….”


오래된 아파트라서 장판을 뜯었더니 화장실에서 거실쪽으로 Y자 크랙이 길게 나있었다. 뭐 고민할 게 뭐 있으랴하고 퍼티를 해두었었다. 작업 반장인 듯 한 분의 잔소리인 즉, 바닥에 본드를 바르고 할 텐데 이렇게 크랙 안에 남은 습기 때문에 퍼티한 부분의 바닥이 잘 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뭐 얼마나 티가 나겠다 싶은데다 이제와서 어찌할 수 없으니 알았다고 할 수 밖에.


“작업 끝나면 하룻밤은 문 닫고 보일러를 좀 많이 올려주세요”

아직, 저희 집이 아니라서 가스 개통 신고를 안했는데요.


부랴부랴 도시가스공사에 연락했다. 저희가 이사가 아직인데, 이사 할 예정인데, 장판 때문에 보일러를 켜야 하는데, 가스가 잠겼는데… 구구절절 상담원에게 말씀드렸더니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사 방문 예약을 해주셨다. 그렇게 뚝딱 해결. 이사만 확실하다면 이사 전에 가스를 열어줄 수 있다는 지식이 1 올랐다.


보일러도 올려야하고, 완성된 부분도 볼 겸 퇴근길에 이사할 새 집에 들렀다. 남색 현관문과 사전에 작업해 둔 현관 신발장. 그리고 온통 전등으로 부엌과 거실을 밝혀둔 레일의 조명들. 하얀 바닥과 규조토 벽. 바닥을 굳힐 겸, 난방과 보온을 위해 앞 베란다로 나가서 외부창을 다시 확인했다. 도시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큰 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이 뷰 때문에 계약했는데, 이제 이 뷰를 완성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안방과 작은방, 창고방과 부엌, 거실을 꼼꼼히 돌아보며 내외부창을 꼭꼭 닫았다. 이제 내일 청소를 끝으로 새 집 준비가 끝났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보일러를 켰다.


안켜졌다. 왜? 에러메세지가 뜨고 난방이 되지 않았다.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았다. 콘센트를 안꼽았나? 아닌데. 두꺼비집 차단기는? 잘 올라가있는데 왜 이러지? 패널을 잘못 설치했나? 아닌데. 왜 그러지. 이럴때 우리의 친구 초록창을 뒤져야했다.


음, 가스가 차단되었다가 다시 연결되는 경우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초록 창 답변. 단순히 보일러에 연결된 콘센트를 다시 뽑았다가 꼽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초록 창 답변.


아, 내 무드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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