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유월 Mar 18. 2024

#08. 살다가, 살다가.

늦가을에 이사해서 벌써 봄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우리집은 이번 겨울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었지?


이사한지 얼마 안된 시점의 와이프는 늘 그랬다. 심즈를 좋아했다. 가구 배치를 왜 그렇게 바꾸는지. 아 물론, 동선이나 생활의 편의라는 것은 알지만. 좀 힘든 일이었어야지. 아이 놀이방 베란다에 있던 커다란 서랍장은 결국 방 안으로 들어왔고, 놀이방 베란다를 장난감 창고로 만들어 버렸다. 드레스 룸 행거는 몇번을 자리를 옮겨야 했고, 그 옆에 창고 삼아 만들어 둔 렉은 서너번 정리를 당해야했다. 안방의 침대는 두번 정도 크게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지금의 완벽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방은 태생의 한계로 자리 이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사이 와이프는 몇번 주방 가구의 간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 샷시에 대한 중요한 생각이 나서 메모를 겸해 여기다 적어 보자면,

신혼집 이사가 초가을이었어서, 우리의 이사철은 늘 가을 어디쯤이었다. 그러다보니 새 집에 적응할 새 없이 겨울을 나야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베란다 샷시 하시는 분과 대화를 정리해보자면, 

기존에 좋은 제품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용자분들도 잘 사용하셔서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 장기간 사용할 목적이므로 두어군데를 제외하고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도 좋겠다.

외부 샷시나 내부 샷시나 결국 새것이 최고라기보다, 두꺼운게 최고인 듯 하다. 욕실 배관하시던 선생님 말씀처럼,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샷시는 더블로 둬야겠다. 무조건이지.


내 집을 사고나서 좋은 점을 꼽자면, 빌트인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다는 것!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식기세척기가 그렇게 욕망되었다. 내가 혼자 살아온 근 10여년을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힘겨웠던 부분이 설거지였기 때문일까? 자취생과 주부의 커다란 차이를 알려준 문장이 있었다.

주부는 먹고 나서 설거지하고, 자취생은 먹기 위해 설거지를 한다고.


결혼하면서부터 식기세척기를 두려고 했다. 월세와 전세를 살면서 용감하게 식기세척기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식기세척기를 설치할 때 싱크대 하부장을 뜯어내야 할 수도 있고, 규격이 맞지 않아 설치 자체가 불가능 할 수 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사나갈 때 싱크대 하부장을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그 말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겨울을 보내면서, 집을 볼 땐 가급적이면 공실을 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겨울에 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인터넷 블로그를 뒤져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집은 곰팡이 전쟁중이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라서, 난방 온도가 보통보다 높은 편이다. 그런데 구옥이라 내외부 샷시를 교체했었어도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계속된다. 그러다보니 점점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이가 높아지고, 환기는 점점 포기하게 되니까 외벽부터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처음부터 외벽을 전부 갉아내고 항균제를 발라가면서 작업을 했어야한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규조토 페인트를 시공하려던 이유도 곰팡이가 절반이 넘는데, 결국 규조토가 곰팡이에게 져버렸다. 한 겨울에 결국 뒷베란다 외벽을 전부 긁어냈고, 외부문을 열고 지낼 5월쯤에 페인트 공사를 한번 더 해야할 지경이다. 

이러한 고민이 높아지자 먼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다가 이사 나간 지인 부부가 말했다.

“저번에 저희집 오셨을 때, 곰팡이 얘기 기억안나세요? 이번에 거기 집 사신다고 해서 곰팡이 얘기 한번 더 해드렸는데…”

응… 사실 기억이 하나도 안나. 


아이는 장난감과 자기 동화책이 가득한 방에 있는 작은 한쪽 벽을 가지게 되었다. 색연필로 스윽. 크레파스로 스윽. 그러면서 한 마디 한 마디 거들었다.

“여기까지 해도 돼?”

문틀을 넘어 거실 벽을 넘보고 있었다. 

“아니 안돼. 거기 까지야.”

그래놓고, 엄마 아빠도 색연필을 들어 한몫 거들어줬다.

봄 되어서 뒷 베란다 페인트질 다시 할 때 여기도 해야지.



늦겨울을 지나 초봄을 바라보며, 고양이를 데려왔다.

건너 건너 건너어 사람이 기르는 고양이 부부가 일곱마리 새끼를 낳았다. 여력이 된다면 모두다 기르고 싶지만 그 집도 사람사는 집이라 눈물을 머금고 믿을만한 곳으로 분양을 보내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와이프도 예전에 고양이와 살았던 경험이 있고, 아이도 고양이를 썩 좋아한다는 생각에 한 마리 데려오기로 했다.

샴 고양이가 지배하고 있는 그 집 거실에서 아이와 컨텍이 된 고양이를 데려오게 되었다. 여력이 된다면 두마리를 데려가줄 수 있냐는 말에 두 아이를 데려왔다. 

지금은 혼자 왔으면 어쩔뻔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중간에 두어번 셀프 인테리어 공사 현장을 왔었고, 어린이집 가 있는 사이에 지금 집으로 이사했다. 하원하고 새 집으로 처음 오던 날, 차에서 펑펑 울었다. 여기는 집이 아니라고. 신발 신고 들어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고.

밖에서 친구들과, 혹은 테마파크, 동물원 같은곳에서 즐겁게 놀다가도 피곤하고 힘들어지면 집에 가자고 떼쓴다. 콘크리트만 삭막하게 남아있던 공간은 이제 아이가 떼쓰고 돌아가야하는 집이 되었다. 아늑히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늦게까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고양이들이 걱정할 집이 있다.

3개월간 총알이 부족해서 땀흘리고 싸우고 웃음 가득했던 그 인테리어 현장.

그리고, 고양이 두마리가 캣폴에서 아웅다웅 싸우다가 아이에게 중재당하는 지금 이 곳.


그 모든 곳이 집이었다.

이전 15화 #07. 끝마치며 다음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