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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호 Nov 09. 2019

빈민가에서 보내는 편지





떠나는 내게 꽃을 건네줍니다. 작고 여윈 손으로 정성스레 꺾어온 꽃 한 송이가 여기 이 마음에 한 아름이 되어 자리 잡습니다. 사랑이 벅차 울고 말았으나 그럼에도 넘치는 사랑은 멎을 줄을 몰라서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꾸만 밟히는 마음을 매듭짓기 위해 떠나온 여행에서 새로운 마음을 구석구석 새겨 두는 나를 발견합니다. 나는 미련하게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지를 생각합니다. 또 얼마나 아파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꽃보다 맑던 눈빛, 꽃향기보다 향기롭던 손짓, 꽃잎에 맺힌 이슬보다 진하게 스며드는 한마디, 가시보다 깊게 파고드는 마음. 그러나 언제라도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가시마저 달갑게 품어봅니다.


녹아버리고 말 것 같은 그곳을 피해 남은 눈물을 마음껏 흘려보냅니다. 그러나 눈물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칠 줄을 모릅니다. 울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나를 향한 눈동자들이 전해온 온기 때문이었으며, 어떤 말도 온전히 꺼낼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달리 곧 떠나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했고, 미련하게 아직 작별의 준비를 못 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삼천 가구가 사는 포카라의 빈민가. 눈을 뜨면 햇살보다 밝은 히말라야 설산이 비루한 삶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눈을 감으면 등 뒤로 희망 없는 삶을 비관한 이들이 몸을 던진 세티 강의 깊고 묵직한 강물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 그들이 날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나의 슬픔을 응원한다며, 나의 안녕을 바란다며. 치료비가 없어 등이 굽어 버리고 말았지만, 차디찬 맨바닥에서 죽은 부모를 그리며 눈물로 축축한 밤을 보내고 있지만, 동냥 받은 푼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지만, 밝게 웃으며 움켜쥔 손을 놓지 않는 눈부신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 내겐 세상 어디보다 따뜻한 곳입니다. 시들어 버릴 줄 알았던 마음과 비가 오면 툭툭 떨어질 것 같던 기억이 따스한 말 한마디를 온실 삼고 흐르는 눈물을 양분 삼아 이제 나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한참을 맴돌다 돌아간 자리, 한 아이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문고리만 붙잡고 있습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질 않아 문 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습니다. 채 닦아내지 못한 몇 방울의 눈물이 꽃잎 위로 뚝- 하고 떨어집니다. 사랑을 정의 내려 본 적 없으나, 이 그치지 않는 눈물은 그저 사랑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습니다.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 그러나 나를 향해 손 내미는 이 아이들이 찬연해서 다시 용기를 내 문을 열어 봅니다.


나는 이 사랑에 문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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