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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호 Nov 12. 2019

눈부신 일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면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왔습니다. 시원한 방바닥에 누워 책을 보기도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가 볕을 즐기기도 했죠. 지루할 때면 동네 마실을 다녀왔고 그럼 어느새 아이들이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해 두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결 가벼워진 아이들의 발걸음을 쫓으면 나는 시간을 잊고 걱정을 잊고 아픔을 잊었습니다. 세상 가장 가벼운 존재가 되어 사뿐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정전이 찾아왔습니다. 촛불을 켜고 함께 기도하고 반찬은 늘 하나였지만 더없이 풍족한 저녁 식사를 함께했죠. 그리고 계속되는 정전에 우리는 대문 앞에 앉아 서로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전한 일상 속에서 변하는 것이 있다면 환영과 반가움의 노래가 점차 작별과 그리움의 노래로 바뀌었다는 것. 자주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는 것. 변하지 않는 건 늘 사랑을 말했다는 것. 여전히 빛나는 수많은 별이 우릴 비추었다는 것. 작별의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우리는 눈부신 일상을 함께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집에 들어서면 타지 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것처럼 마음이 허해져 몇 번이고 사진첩을 뒤적였습니다. 눈이 부시던 일상을 두고 왔으니 나는 떠나온 것이겠죠. 그러니 어찌 집이라고 편했을까요? 일상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머물렀던 시간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예감했던 것처럼,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어 자주 삐걱거리기도 했습니다.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났고 함께 걷던 꽃 길이 생각났습니다. 차가운 소주를 들이켜고 열병 같은 말을 쏟아내도 마음은 식지를 않았습니다.


그리움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더 그리워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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