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사 Oct 18. 2019

여성문학을 찾아서

: 한국 고전문학의 여성 주인공

한국의 고전문학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얼마나 될까? 여성 작가가 쓰고 여성 독자가 읽었던 작품은 또 얼마나 될까? 여성의 삶과 고민을 담은 작품은 얼마나 될까? 전근대 시기 대부분의 여성은 한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고, 사회에 진출할 수 없었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기생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천민이라는 신분과 가난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여성과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성이 드물었던 시기에 산생 된 여성문학이 적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있었고, 그 여성들의 고민과 꿈이 여러 세대를 거쳐 도도한 흐름을 이루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시리즈는 역사와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여성들의 삶과 고민,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자료 자체의 한계가 존재한다. 한문으로 된 자료는 대개 남성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이며, 독자 역시 남성이 대다수였다.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남성 작가의 문제의식에 따라 선택된 여성이며, 여성의 목소리로 말을 하더라도 남성 주인공의 욕망과 판타지가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여주인공들은 남성의 입맛에 맞게 말하고 행동한다. 과연 여성문학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회의와 번민이 밀려오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남성 작가에 의해 창작된 열녀전이 수없이 남아 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열녀는 무덤덤하게 오직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나아간다. 비록 수없이 많은 열녀가 과거에 추앙되었더라도, 이들의 삶이 현대 여성들에게 과연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자료 중에서 여성작가가 쓰고, 여성 독자가 읽었음직한 작품을 발견하더라도, 그 주제가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데 그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기생이었던 과거를 수치스러워하고 첩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이 정실부인인 양 글을 썼던 금원의 경우, 현대 독자들에게 어떠한 귀감이 될 것인가? 과연 현대 여성들에게 교훈과 흥미를 줄 만한 고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높았던 기대를 내려놓고 보다 너그러운 기준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영웅적인 행적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던 여성들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치부한다면 과거의 문학을 연구하는 이의 책임을 방기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여성 주인공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더라도, 수많은 선택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제외한 다른 길이 없었더라도,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가고자 노력했고 그 의미가 현대 독자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성찰할 수 있다면 여성문학의 범주에 넣고자 했다.

현대의 젊은 여성들은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능력을 갖춘 당당하고 주체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고된 노동과 저임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성추행과 성희롱에 노출되어 있다. 21세기의 남녀차별이 어디 있냐며 남성과 다름없는 능력을 요구받으면서도, 독박 육아와 며느리로서의 도리, 워킹맘으로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부의 사례이나 취업 면접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점수를 낮게 받아 떨어지며, 그 허들을 넘더라도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없지 않다.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으로 희생된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기사는 끊이지 않는다. 미투 운동으로 사회에 경각심을 준 것도 잠깐, 아직도 기사의 댓글에는 피해자를 꽃뱀이라 지칭하며 인성과 행실을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있다.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상대를 찾고, 차별과 불합리에 꿋꿋이 맞서며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강인하고 현명한 여성 주인공들이 일상에 수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에서 찾은 여성 주인공과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여성 주인공들은 꽃길을 걷지 않는다. 피눈물로 얼룩진 붉은 길을 걸어가지만, 그들의 두 손에는 고난 속에서 얻은 뼈살이꽃과 살살이꽃이 쥐어져 있다.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여성 주인공들에게 여성문학을 찾는 과정이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