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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사 Oct 20. 2019

이옥영 1: 최척과 혼인하기까지

짝을 선택하는 능동적 여성

    

  이옥영은 16세기 후반 전라도 남원에 살았던 여성이다. 원래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살았는데, 부친인 이경신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옥영에게는 득영이라는 오빠가 있었는데 열아홉 살에 요절했다. 옥영은 모친 심씨와 둘이 지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나주로 피난을 갔고, 거기서 또 남원으로 옮겨 심씨의 친척인 정생원 집에서 객식구로 머물고 있었다. 옥영은 오빠가 글을 배울 때 어깨너머로 글을 익혀 한문을 쓰고 읽을 줄 알았다.

  그녀가 남원에서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정생원 집에 글을 배우러 오는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최척이라고 했다. 옥영은 최척이 글을 읽는 소리가 듣기 좋아 창가에서 몸을 숨긴 채 그의 소리를 엿듣곤 했다. 어느 날, 최척이 혼자 앉아 책을 읽을 때, 옥영은 시가 적힌 쪽지를 창문 틈으로 던진다. 최척이 쪽지를 주워 보니, 여자가 짝을 구하는 마음이 담긴 시구절이 적혀 있었다. “나를 찾는 선비여, 어서 말씀하세요.” 최척은 마음이 두근거리고, 시를 보낸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리가 꽉 찼다.

  옥영은 여종 춘영을 시켜 공부를 끝낸 최척에게 답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최척은 상대를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과 인연을 맺고 싶은 마음을 적어 춘영에게 답장을 건넸다. 옥영은 다시 춘을 시켜 자신의 편지를 최척에게 전했다. 당신과 혼인하고 싶으니, 중매를 통해 혼사를 의논해달라는 구체적인 요청이 담긴 편지였다. 최척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부친에게 혼담을 넣어달라고 청한다. 부친은 이옥영의 집안이 본디 서울의 명문가 집안이라, 가난한 우리와 혼인을 하지 않을 것이라 주저하지만, 최척은 일단 말이라도 해보라고 부친을 설득한다. 최척의 부친이 혼담을 꺼내자, 옥영의 모친 심씨는 예상대로 최씨 집이 가난하다는 점에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옥영은 모친에게 자신의 관찰 결과 최척의 인물됨이 믿을 만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최척과 혼인을 맺지 못한다면 죽어도 한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옥영은 모친에게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일은 자신의 일생에 중차대한 일이며, 그래서 불가피하게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한다. 옥영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배필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옥영의 모친은 옥영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보고, 최척과의 혼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당시는 왜적의 침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였다. 적군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장 변사정이 영남으로 싸우러 가면서 최척을 의병으로 데리고 갔다. 최척은 혼례일이 가까워오자 고향에 갔다 오겠다고 요청했지만, 의병장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옥영은 혼례일이 지나고 최척에게 연락이 오지 않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근심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이웃집 부자인 양씨가 정생원의 아내에게 뇌물을 보내며 옥영과 양씨 집 아들을 맺어줄 것을 부탁한다. 정생원의 아내는 심씨를 꼬드겨 최척과의 혼사를 무르고 양씨 아들과 새로운 혼사를 맺도록 일을 꾸민다. 옥영은 최척과 혼인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겠다며 거절하지만, 심씨는 딸을 부잣집에 보내고 싶은 마음에 고집 부리지 말라며 이를 무시한다. 그러던 어느 밤, 심씨가 잠을 자고 있는데 옆에서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옆을 짚어보니 옥영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깜짝 놀라 찾아보니, 옥영이 창문 아래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어 쓰러져 있었다. 숨이 막 끊어지려는 찰나였다. 심씨는 울부짖으며 사람을 부르고 옥영의 목에 매어 있는 수건을 풀고 몸을 주물렀다. 물을 입에 흘려 넣으니 얼마 뒤 옥영의 숨이 돌아왔다. 그 후에는 아무도 옥영에게 양씨와의 혼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최척의 부친은 그간의 사정을 최척에게 편지로 보냈고, 최척은 이 소식을 듣고 병이 깊어졌다. 의병장은 최척이 병든 이유를 듣고서 최척을 고향으로 보냈다. 최척은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병이 나아 옥영과 혼례를 올렸다.

  옥영은 최척과 혼인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이겨냈다. 먼저 최척의 마음을 얻어 구혼 절차를 밟도록 했고, 그 후에는 모친을 설득해야 했으며, 전쟁으로 둘이 헤어졌을 때는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그 결과 혼인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를 넘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혼인의 과정에서 열다섯 살 여성이 이처럼 주체적이고 계획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옥영의 비범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규방을 나가지 않으면서도 부모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담의 틈으로 연인을 선택하는 여성 주인공은 한문 최초의 소설로 유명한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의 최랑에서부터 역사적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녀 역시 높고 높은 담 속에 살면서, 벽의 틈으로 이생을 보고 담을 넘어오라 유혹한다.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주관에 맞게 짝을 선택한 여성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를 자신의 배우자로 만드는 과정은, 부친의 꾸중에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소심한 남성 주인공들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소설의 작가는 분명 남성이고 대부분의 독자 역시 남성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당시 한문을 읽고 쓸 수 있는 이들은 대개 남성 사대부 계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주인공과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남성 주인공은 사대부 남성의 어떤 욕망을 충족시켰던 것일까? 조선의 여성은 규방에 갇혀 여성의 의무에 억눌렸으리라는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소설 속의 여성들은 한문에 능통하며,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나고, 남성 사대부와 시를 화답하며 그 마음을 주고받는다. 짝을 선택하고 혼인을 결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남편의 유일한 지기이자 지음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그러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그대로 현실에 재현되어 있는 사례가 바로 이옥영이다. 그러나 옥영의 삶은 혼인 후에 커다란 질곡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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