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 호는 방향을 상실한 채

by 수경

2교시가 끝나면 20분 간의 중간 놀이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한시적 기간 동안, 그 시간에서 일부를 떼어내 4학년 남자아이 두 명의 구구단 학습을 돕기로 하였다. 한 아이는 구구단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는지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고, 다른 한 아이는 놀이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억울한 마음이 드는지 내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표정이 찡그러진다.


"3단부터 시작할게."

4단, 6단, 그리고 7단. 목소리가 하나는 크고 카랑카랑한데, 하나는 들릴 듯 말 듯. 안 들리는 쪽으로 나의 몸은 자꾸 기울어진다. 모든 구구단에서 5의 곱셈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조금씩 혼란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3.7에 24, 4.6에 28, 6.7에 48. 심지어는 2단과 5단도 잘못 알고 오답을 소리 내어 말한다. 이런 식으로 혼돈이 오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들이 구구단을 외우기로 한 이 시간을 위해 집이나 학교에서 소리 내 외우거나 공책에 써보기는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미리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오로지 대략 5~8분 정도 되는 이 시간에만 내 앞에서 외우는 것으로 구구단 정복이 가능할 거라 생각한 걸까? 나는 여름 방학 전으로 집중 암송을 통해 속전속결로 구구단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였는데, 지금은 조금의 착오를 인정하게 되면서 다른 방법을 찾느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빡지 숙제의 부활이다. 이렇게라도 하면 공부를 한 것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중간 놀이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2단에서 9단까지 세 번씩 써와야 한다고 주말 숙제를 내주었다. 너무 양이 많다고 해서 2번 쓰는 것으로 숙제를 줄여주었다. 한 아이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겠노라 하였고 다른 한 아이는 부정의 답은 없었지만 확신 없는 얼굴로 무심히 나를 쳐다보았다.


휴일을 보내고 난 월요일 아침,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는 수학 시간에 아이들의 구구단 실력은 바닥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4와 9분의 3'이라는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꿀 때, 분모 9는 그대로 놔둔 채 자연수 4와 분모 9를 곱한 뒤에 분자 3을 더해 분자의 자리에 사뿐히 놓아두면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주 단순한 패턴이라고 스스로 쉽다고 인정하면서 정작 구구단에 막혀 헤매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지난 금요일에 내준 구구단 빡지 숙제도 까맣게 잊은 채, 아이들은 편안한 휴일을 보내고 온 듯하였다. 구구단 호는 망망한 물 가운데에서 방향을 잃은 채 헤매고 있었다. 일장 잔소리를 늘여놓으려다가 한 소절로 짧게 매듭을 지었다. 너무 깊게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는 것은 금물이렷다! 시간이 아이들의 머리와 생각을 여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오면 조금 성숙해지고 고민도 깊어진 초등 4학년이 되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우선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기로 하였다.


#초등학교 #구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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