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뿌리튼튼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수요일은 본관 3층으로 아이들 마중을 간다. 학기 초 학교 곳곳을 알지 못하는 1학년 신입생들을 위한 배려로 시작된 것이지만 마중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이제는 한 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어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방과 후의 모습은 뒤섞인 물감 같다. 집으로 가는 아이들, 늘봄교실로 향하는 아이들, 다른 방과 후 교실로 뛰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이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분주한 선생님들까지. 소용돌이가 한차례 휘몰아치고 나가는 모습이다.
매번 가방을 가장 늦게 챙기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공부 장소로 이동하는 출발 신호를 보내면, 다른 두 아이는 복도를 쏜살같이 뛰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먼저 도착한 공간에는 문이 활짝 열려있고 아이들은 물건들이 포개져 있는 사이에 꽁꽁 몸을 숨긴 채 숨소리조차 가만히 하며 숨바꼭질 장난을 내게 건다.
"거기는 벌레도 있고 도깨비도 숨어있다. 어서 나와~~"
불호령을 해도 끄떡없는데, 내게는 손을 잡고 함께 온 아이의 한글 학습이 더 바쁘다.
'그럼 잠시 그렇게 숨어 있어라. 한글 자음 공부를 한 번 복습하고 다시 오겠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한글 학습이 가장 안 되는 아이의 자음 복습에 들어간다. 그래도 꽁꽁 숨어있는 두 아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숨바꼭질 장난에는 아랑곳도 없이 한글 공부에 몰두하는 목소리만 들리니 두 아이들은 바깥 사정이 여간 궁금한 게 아닌가 보았다.
빼꼼히 내다보는 눈과 그쪽을 예의주시하는 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꾸라지같이 눈이 아래로 쏙 들어간다. 생쥐의 놀란 눈이 이렇지 않을까! 그 사이 나는 가장 한글 학습이 더딘 아이의 자음 공부 복습을 끝내게 된다. 이제는 숨어있는 두 생쥐를 바깥으로 몰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 묘약은 바로 교감 선생님이다. 교감 선생님 모셔와야겠다, 고 하면 직빵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 몹시 서운해하며 얌전히 책상으로 와서 앉는다.
그간 공부한 것을 총복습을 하며 받아쓰기를 한다.
"나는 꿈이 있어요.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되는 꿈. 유명한 연예인이 되는 꿈.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는 꿈"
'소중한 꿈'이라는 노래 가사의 앞부분인 이 대목을 수도 없이 읽고 공책에 썼는데, '꿈'이라는 글자에서 막힌다. '나는'은 글씨를 쓸 수 있는데, 쌍기역에서 가로막혀 버렸다. 이번엔 기억하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폭삭 속은 기분이다.
다시, 한글 자음을 부르면 그것을 공책에 쓰도록 하는, 난이도를 폭삭 낮춘 받아쓰기를 한다. 평소 어려워하는 자음을 부르기 전에 워밍업으로 쉬운 자음을 먼저 부른다.
"기역, 시옷, 히읗"
이 자음들은 재빠르게 공책에 쓴다.
'니은, 디귿, 미음, 비읍, 티읕, 쌍디귿'에 대해서, 한글이 가장 더딘 아이는 아직도 자음의 소리가 그 이름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홍길동의 히읗' 하는 식으로 아이의 이름자에 있는 자음을 부르며 어서 쓰라고 증기를 푹푹 내뿜는 기관차처럼 말을 한다.
한 주 전에 아는 것을 2주가 지나면 알사탕처럼 까먹게 되는 이 요지경 같은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글 공부를 이끌어 온 나의 한 학기가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느낌이면서 또다시 폭삭 속은 기분이 스며온다.
2학기 때는 망가진 '한글 호'를 수리해서 다시 한번 항해를 할 수 있기를!
#초등학교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