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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Feb 19. 2021

미동 없는 삶의 가치

비록 오늘의 내가 이토록 보잘것없었을지라도



사는 것이란 곧 삶을 버티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리에 고여있는 삶일지라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유의미하다는 말.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최초의 화자는 알고 있을까.




한 때 나는 오직 책임감으로만 살았다.

내가 사는 것을, 그러니까 버티는 것을 그만 두면 내 이름을 달고 있던 빚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내 삶은 그저 목적 없이 떠도는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에 의미가 없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이 고난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떠돌던 삶.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면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날들이 많이 보인다.


내 존재는 무엇이며, 이렇게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토록 볼품없는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묻고 또 묻다가 기어이 종이를 우그러뜨리고 말던 그때의 나. 아마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것 같다. 그저 버티기만 하는 삶이 너무 하찮아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버티어 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쉬운 계산이다. 오직 버티고 있었을 뿐인 그때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버티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만한 성과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 해도 분명 그렇다.


더 이상 별자리를 가지고 방향이나 날씨를 알아내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별을 사랑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또 이 고난을 견뎌낸 당신의 경험이란 얼마나 반짝이는가.



버텨 내다 보면 언젠가는 몸에 힘을 빼고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그토록 쓸모없게 느껴졌던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나 유의미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의 무가치가 괴로운 것은 당신이 우주의 타임라인에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꽤나 큰 의미를 가진다. 존재의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버티어 낸 시간만큼 그 몸집을 불려 언젠간 손에 잡히게 될 것이다. 정말이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어린 왕자>, 생텍쥐베리


나는 오늘도 보잘것없는 하루를 보내었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미적거리고, 음식을 축내고, 하릴없이 티브이만 틀어놓다가 저무는 밤을 맞이했다.


이토록 고요한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언젠가 다가올 찬란한 순간의 발소리는 가장 고요한 순간에만 들을 수 있다는 걸.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 왕자의 말처럼, 지나온 날 중 가장 소중했을 오늘의 가치는 그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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