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지켜진다는 것

루틴의 행복

by 아토

일상이 지켜짐이 감사한 줄 몰랐다.

퇴근 후 학교 가는 길이,

교수님 강의가 지겨워 조는 일이,

전공 책을 싸매고 머리 아파하는 일이,

늦은 밤 어둠을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피곤에 쩔어 곯아떨어지는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이 감사한 줄 몰랐다.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준비하다

야간 대학 수업을 못 갈 뻔했다.

출근한 순간부터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해

부단히 부지런을 떨었건만

아무리 일을 해도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투표소를 설치해야 하는 초등학교에서는

강당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한다며

오후 5시가 넘어서 투표소 설치를 하러 오라고 했다.

5시부터 설치를 시작하면 도대체 집은 언제 가란 말인지.


부랴부랴 설치를 마치니 벌써 6시 30분이었다.

행정복지센터로 돌아와 수당을 계산하고,

선거날 먹을 간식을 준비하고,

각종 선거 준비물들을 챙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었다.


늦어도 오후 7시에는 학교로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7시에는 출발해야 살짝 늦게라도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이 타들어갔다.

어떻게든 학교에 가려고 하루 종일 얼마나 부지런을 떨었는데,

머리에 김 나도록, 발에 땀나도록 얼마나 뛰어다니며 노력했는데,

이렇게 출석 점수와 실습 점수를 까먹어야 한다니.

너무 아까웠다.

(내가 이렇게 학점에 진심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오후 7시 30분. 거의 반쯤 포기할 무렵,

같은 수업을 듣는 친한 학우님이

실습은 조금 늦게 시작하니

그거라도 하러 오는 게 어떻겠냐 했다.

비록 지각 처리되더라도, 실습 점수라도 챙기도록.


순간 마음이 동했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는데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부랴부랴 식사를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일을 얼른 처리했다.

어떻게든 학교에 가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오후 8시 10분.

드디어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아마도)

다른 주사님들은 아직 수당을 세고 있을 때,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아 학교로 향했다.

일분일초가 급했다.

어떻게든 9시 전에 수업에 들어가

실습을 할 계획이었다.


"할 수 있다."

"갈 수 있다."

"괜찮다."

"다 방법이 있다."


학교 가는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신호가 걸릴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5분 빨리 가려다 훅 갈까 봐

조급한 마음을 누르려고 저 말들을 계속 되뇌었다.


8시 55분.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강의실까지 뛰었다.

'달려!'

속으로 외쳤다.


조용한 강의실에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입장했다.

학교에 왔다.

강의실에 왔다.

감격스러웠다.

하루 종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퇴근 후 고역스러운 심정으로 오던 학교였는데

융통성 있게 일찍 마쳐주지 않는다고,

수업 시간을 꽉꽉 채워 강의한다고,

매번 실습 과제까지 내준다며

불평불만 하던 학교였는데


학교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줄이야.

그저 그렇게 일상이 평화로이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했는데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더니

뒤늦게나마 그런 일상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길고도 길었던 오늘 하루.

아주 알찬 하루였다.

하루하루 그렇게 흘러감에 감사함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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