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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Oct 30. 2023

소화되지 않은 감정

퇴사 후 감정 정리

오늘로써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면직한 지 대략 2달 정도가 지났다. 의원면직 공문이 올라가고 나서 뜻밖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가까운 동기들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들, 차석님, 팀장님, 과장님들까지. 내가 먼저 인사를 전하지 못해 죄송하기도 하고, 현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직접 연락 주신 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한바탕의 연락 세례가 이어진 후, 다시 조용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면직과 동시에 나의 첫 임신을 알게 되었고, 이후 입덧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을 찾아뵙지도 더 긴밀한 연락을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입덧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그간 날 많이 챙겨준 고마운 분들, 함께 고민을 나누던 가까운 사람들까지 일부러 애써 외면한 채 지내온 것 같기도 하다. 함께 고생하던 복지직 주사님들에게 미안해서일까, 혼자 사서직으로 전환해 버린 게 민망해서일까, 직렬은 바뀌었지만 다시 같은 조직에서 얼굴을 부딪혀야 한다는 게 불편해서일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일 년 전, 나의 첫 후임은 본가가 있는 지역의 공무원에 합격하면서 약 3년간의 근무를 끝으로 면직을 했다. 그분은 면직을 하면서 그간 감사했던 분들을 일일이 찾아뵈며 소정의 선물과 함께 감사와 작별인사를 나누셨다. 그때 나는 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서 본인의 근무지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까지 나를 찾아와 감사의 선물을 주며 작별인사를 전했다.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만두는 와중에도 그간의 인연들에게 찾아가 인사하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때는 아직 나의 면직과 이직이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던 시기라 부러운 마음도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인사를 잘하고 떠난 덕일까, 아직까지도 그분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남아있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서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미안함, 민망함, 불편함, 약간의 미움이 알게 모르게 뒤섞여 제대로 된 인사조차 먼저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물론 내 후임의 경우는 그만두고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기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 후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만두더라도 다시 같은 지자체에 신규 공무원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직렬만 바뀐 채. 그래서 소문이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더욱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인사팀에 면직 의사를 밝힌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전 차석에게 전화가 온 것을 보아 소문이 정말 빠른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다 핑계일 수 있겠지. 반대로 생각하면, 난 다시 같은 조직에 들어와야 되는 입장이기에 더욱이 마무리 인사를 잘하고 나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얼굴을 마주할 사람들이니까. 내 후임은 다신 안 볼 사이가 될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주고 인사를 하며 떠났는데, 나는 어찌 된 게 다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다니. 시간이 흐르고 입덧이 서서히 완화되면서 제정신을 차려가니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퇴사하고 2달이 다 돼가는 이 시점에 인사를 하러 갔다. 첫 시작은 우발적이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갑자기 보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나 시청에 들렀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와 시청이 제법 가까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하고 찾아갔는데도 다들 너무나도 반갑게 반겨주셨다. 먼저 인사팀에 면직의사를 밝힌 후 한 시간도 안 돼서 전화가 왔다는 전 차석님을 만났다. 어쩜 계속 축하할 일만 생기냐며 귀여운 질투를 하시며 사서직 합격과 임신을 모두 축하해 주셨다.


이후 찾아뵌 과장님께서도 사서직 합격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시고, 임신 축하도 해주셨다. 과장님은 내가 신규 때 함께 일하며 나의 첫 공직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를 제법 공무원 티 나게 키워주신 분이기도 하다. 면직 공문이 뜨고 얼마 안 가 전화를 주셔서는 왜 그만뒀냐, 누구랑 상의한 것이냐, 그럼 다시 9급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그간의 경력이 아깝지 않냐 등등.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신 채 다소 혼내는 듯한 말씀을 잔뜩 하셨었다.






그래서 찾아뵙기가 무섭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얼굴을 뵈니 너무나 반겨주시고, 이야기하는 내내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잘했다며, 대단하다며, 역시 너는 다르다며 갖은 칭찬을 해주셨다. 지난번 전화로 과장님께서 너무 혼내셔서 사실 뵈러 오기 쪼끔 무서웠다고 말씀드리니, 놀래시며 혼내는 게 아니라 그동안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 시간을 어쩌면 다시 겪어야 하니 그게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셨다며 절대 혼내는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렇지만 너는 너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찾은 게 아니냐며 그래서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해주셨다. "사서직 합격이 어디 쉬운 거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는 그걸 해내지 않았냐, 너는 거기서도 잘할 거다."라고 하시며 힘을 북돋여 주셨다. 그제야 나를 아끼시는 마음에 면직 소식이 더욱 아쉽고 안타까웠으리라 하는 게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보다. 나도 그간 생긴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의원면직 공문이 올라간 후 연락해 주신 분들 대부분은 사서직 이직과 임신을 모두 축하해 주셨다. 함께 일했던 복지직 주사님들 중에는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다. 동기들 중 한 명은 나를 따라오겠다며 문헌정보학과에 진학까지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 소화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었다. 바로 면직 전 마지막 근무지였던 행정복지센터에 대한 감정이다. 정확히는 행정복지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겠지. 3년 차에 처음으로 행정복지센터에 발령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시청에서만 일을 했었다. 시청과 행정복지센터의 업무 스타일이 다르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시청의 조용한 사무실과는 다르게 출근부터 퇴근까지 몰아닥치는 민원을 상대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방금 막 인사발령을 받아 복지 민원대에 앉은 사람에겐 가혹한 수준이었다. 주말 내내 인수인계를 받긴 했지만, 그 많은 사업을 단 이틀 만에 다 숙지하기란 불가능이기에 업무를 하면서 수시로 공부하고 틀리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팀 모두가 각자에게 들이닥치는 민원을 쳐내기 바빠서 하루종일 서로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퇴근시간이 다 돼서야 살아있냐며 한마디 하는 날이 허다했다. 특히나 서로를 등지고 앉아있는 팀의 형태와 교대로 밥을 먹는 민원대의 구조상 팀원 전체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에 따른 소통의 부재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각자가 너무나도 힘들어서일까. 업무분장은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정말 목숨을 건 사투였다. 팀의 분위기가 좋을 때도 예민할 수 있는 게 업무분장이다. 누군가의 업무를 누군가에게 미루는 순간, 서로 사이가 좋다가도 한순간에 갈라질 수 있는 것이 업무분장 문제이다. 어느 누가 자기에게 업무가 더 주어지는 것을 좋아할까. 가뜩이나 하루를 버텨내기도 힘든 모두에게 업무분장은 세상 예민한 주제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팀장님과 함께 상담실에 앉아있었고, 논의를 빙자한 업무 분장 통보가 내려져 있었다. 이게 뭐지? 뒤통수를 씨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했다. 평소 팀원들의 업무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던 팀장님은 무작정 나보고 이 일을 더 맡으라 하셨다.


내가 의견을 말하니 이미 다 정해졌다고만 하셨다. 이대로 하라고. 이미 정해졌다고. 네가 이해 좀 하라고. 논의를 하는 자리라 하시더니 이건 통보가 아니냐고 하니 너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 자체가 논의라고 하시며 이해한 걸로 알고 있겠다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시던 팀장님.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자기들끼리 입을 다 맞춘 후 나를 불러 통보를 한 것이었다. 그래놓고 가증스럽게 논의라는 말을 붙이다니. 아무리 의견을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무슨 논의인지. 그렇게 뒤늦게 혼자 상담실을 나올 때는 화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는 것 같았다. 마치 만화 캐릭터가 초사이언으로 변신할 때 온몸에 슈퍼 에너지가 흐르는 것처럼 내 온몸에 슈퍼 화의 기운이 흘렀다.





공직생활 4년간 겪어보지 못한 업무분장의 통보로 팀장님에게도 화가 났지만, 이로 인해 같이 일하던 팀원들에게도 알게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앞에서는 서로 고생 많다며 위로하더니 뒤로는 이런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육아휴직 후 이번에 복직하셨다고 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걸 알기에 먼저 나서서 도와줬던 나의 행동들이 사람을 얕잡게 보는 계기가 되었을까. 아무 체계가 없던 서류정리와 업무 방식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잡아가며 점차 안정되어 가니 내 업무가 별거 없어 보였던 걸까. 한 달간의 병가로 본인의 업무대행을 전적으로 맡아줬지만 그거보다는 함께 점심밥을 먹는 팀원과 더욱 친밀해서였을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끔찍이도 싫어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평소 같지 않던 행동들이 이어 진건. 인사가 만사라고 언제나 인사만큼은 잘하려고 했던 나인데, 사람이 싫어지니 출근하며 모닝 인사하는 것이 고역이 되었다. 그래서 대충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버렸다.


그리고 함께 탕비실에서 점심을 먹는 시간도 괴로워 혼자 나가서 먹게 되었다. 점심밥을 먹으며 서로 업무에 대한 고충, 관심 분야, 개인적인 일상 등을 나누는 것이 보통인데 도저히 팀원들과 웃으며 그런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행정복지센터의 위치상 가까이 식당이 많이 없어서 주로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탕비실에서 함께 먹기가 거북해 혼자 조용히 차에 가서 점심을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학창 시절 왕따도 아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혼자 차에서 밥을 먹는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래도 나름 장점은 있었다. 민원대에 있으면 하루종일 말을 해야 하는데 점심시간만큼은 말을 안 하고 입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점심밥을 먹은 후 차 안에서 꿀 같은 낮잠도 잠시 누릴 수 있었다.


스스로 팀원들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살았다. 내가 마음이 상했다는 걸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했다. 아니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나도 알고 있다. 그때의 내 행동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걸. 그래서 면직을 한 지금까지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잘못만이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한 점이 있다. 나의 잘못인 듯 타인의 잘못인 듯 헷갈리며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계속 안고 지내왔다. 나 스스로도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남편에게 물었다. "너는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 그러고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면직을 했지만 지금도 그 행정복지센터를 떠올리면 미운 감정이 남아있고, 더 이상 같이 일을 하진 않겠지만, 같은 조직에 다시 들어가다 보니 언젠가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남편도 그 당시 내가 힘들어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냥 쿨하게 "잘 지냈어요?" 하고 지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오래 대화할 것도 없고 그냥 지나가면서 잘 지냈냐고 한마디 하고 넘기면 된다고. 뭐 그래. 나중에 혹시라도 마주친다면 그냥 어색하게 웃으면 그렇게 지나갈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리고는 또 물어봤다. 예전에 남편을 아주 지독하게 괴롭혔던 사람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을 언급하며 다시 마주치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남편의 대답이 가관이다. "난 인사 안 할 건데? 안 마주칠 거야." 그래. 누구에게나 XXX 한 명씩은 있나 보다. 평소 남 험담이나 불평불만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라 저런 대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론 안심했다. '그래. 다행이다. 나만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니구나.'






며칠 전 친했던 주사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이제는 팀장님이 되셔서 호칭을 바꿔드려야 하는데 아직 주사님 또는 차석님이 입에 붙어서 헷갈린다 하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부르라고 하시는 참 좋은 분이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간의 밀렸던 근황 토크도 나누고, 나의 오랜 고민인 소화되지 않는 감정에 대해 말씀드렸다.


일을 하던 당시에도 내가 힘들다는 말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나 보다. 그때의 내 상황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 정리의 어려움을 잘 이해해 주셨다. 그러고는 이런 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셨다. 내 감정이 정리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거라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그리 잘한 건 없는 것 같다고, 이제와 서보니 그때의 내 행동이 가끔은 부끄럽다고 말씀드리니 그건 서로 잘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나 혼자서만 잘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서로가 잘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업무를 너한테 넘겼더라면 본인이 먼저 커피라도 사면서 이거 이거를 네가 해주는 대신 내가 이런 부분은 하겠다 등등. 이런 말이나 행동들을 하면서 서로 잘해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시청에서 일하던 때에도 업무분장 때문에 예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모두들 뭐 하나라도 더 맡는 걸 싫어하다 보니 결국 막내인 나에게 업무가 떨어졌었다. 한 가지 업무가 더 늘었을 뿐인데 왜 그리 부담되던지. 내 업무가 제일 만만한가 싶어 내심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내가 어려워하는 걸 알다 보니 차석님도 마음 써주시고, 팀장님도 마음 써주셔서 결국 팀원이 한 명 더 충원되고 모두의 업무가 다시 분담되면서 짐을 덜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후 차석님과 팀장님과 차도 한잔 하며 그때 업무분장으로 조금 힘들고 서운했다고 투정 아닌 투정도 부리고 여러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업무분장으로 인해 난감했음을 이야기했다. 결국 팀원이 한 명 충원되면서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서일까 여전히 그분들과는 면직 후에도 연락하고 만나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게 바로 서로가 노력한 덕분이 아닐까.


내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온전히 나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울한 마음이 있던 차에 이건 “서로 잘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 말이 마치 해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그 당시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더라면 과연 면직과 이직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시청에서도 나름 적응을 잘하였고, 거기다 처음 가본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적응을 잘했더라면 '여기도 나름 괜찮네~' 하며 안일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순간도 거기 더 있기 싫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고, 덕분에 나는 면직과 이직에 대해 더욱 열렬히 갈망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업무를 마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차를 몰고 타 지역까지 야간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끔찍이도 싫었던 공무원 시험공부를 다시 할 힘이 생겼다. 덕분에 끝내는 사서직 공무원에 합격하여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면직할 수 있었다. 


내가 한편으론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하니, 함께 대화를 나누던 팀장님이 된 주사님께서는 "그들에게 커피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떠셨다. 너무 고맙다고 덕분에 이직할 수 있었다고 뭐라고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장난을 치시기에 "정말 밥이라도 사야 하나 싶다"며 나도 덩달아 너스레를 떨었다.






희한한 일이다. 혼자 오랫동안 고민하던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당사자에게 문자가 왔다. 내용은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그분은 아직 그 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으시고, 그 팀에 새롭게 가신 팀장님이 나와 매우 친한 분이라서 오랜만에 기쁜 소식도 전하고 얼굴도 뵐 겸 점심 약속 날짜를 잡는 통화를 한 직후였다.


팀장님을 통해 내 소식을 들은 걸까. 그렇다고 해도 선뜻 먼저 연락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면직 후 한 번도 서로 연락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의외였다. 살짝 놀라기도 했다. '감히 나에게 연락을 해?' 라기보다는 '먼저 연락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고맙네.'라는 마음이 먼저였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축하 감사하다고, 다들 이 어려운 임신을 어떻게 해내신거냐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고는 다음에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얼굴 뵙자고까지 했다.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스스로도 놀랐다. 먼저 내밀어준 그 손이 고마워서 기다렸다는 듯 덥석 잡았다.


언젠가 다시 웃으면서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며칠 뒤 팀장님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방문하게 될 행정복지센터에서 바로 마주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평소 위가 약해 음식물 소화도 오래 걸리는 나인데, 감정소화도 그에 맞춰 천천히 진행해보려 한다. 약하지만 잘 다스리면 소화해 내는 내 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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