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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16. 2023

조금 부족하면 어때

아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며 깨달은 '화합의 중요성'

'올해 함박눈은 처음이구나'


눈이 온다. 오늘은 아들의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아들은 취미로 첼로를 배우고 있다. 음악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악기 하나 정도 다룰 줄 알면 어른이 되어 감정의 동요가 왔을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어른이 되어 마음속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왔을 때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공연장에는 아이들의 연주를 보러 온 가족들로 가득 찼다.



드디어 멋진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님들 사이로 아들이 보인다.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아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게 아이를 키우는 보람인 걸까'


곧 연주자님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멋스럽게 턱시도를 입은 지휘자분께서 등장하셨다. 지휘자의 손이 움직이며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됐다.


새들이 재잘재잘 거리고, 꿀벌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숲 속인 걸까'


오케스트라 선율을 들으니 마치 거대하고도 웅장한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이다. 숲 속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 그리고 숲 속에 서식하는 자연생물들이 내게 말을 건네듯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다.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일까'


시향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와 또 다른 감성이 있다. 


아이들이 저마다 내는 연주음 들은 아이들을 닮았다. 마치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때 느껴지는 마음속 울림과도 같은 그러한 아이들만의 매력이 있다. 순수함, 시향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처럼 화려하지도 능수능란하지도 않지만 그러한 서툼 속에서 느껴지는 아이들만의 감성이 바로 그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실 고민이 많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에 시기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남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불만일 수 있다. 남들을 보면 다 노는 것 같고, 나만 너무 일해서 피해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회사 생활을 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대다수가 이런 토로를 한다.


'협업도 안되고 나만 바쁘고 쟤는 논다. 월급만 받고 일을 안 하는 '월급루팡'이 너무 많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데도 그들 때문에 회사가 망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회사는 비전이 없다.' 모두가 그렇게 얘기한다. 어느 조직에 가도 다들 한결같이 말한다. 그들 말만 듣고 보면, 어느 조직도 비전은 없다. '월급루팡'은 항상 존재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인양.


내 눈앞에 펼쳐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보여지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님들의 모습은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연주를 마치려고 애쓰는 모습들이다.


동료가 나보다 잘 못하더라도, 동료가 중간에 실수를 하더라도, 아이들은 그것을 질책하거나 비난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바라보며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합주를 잘 마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아직 서투르고 완벽한 화음을 내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은 오늘의 연주회를 위해 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고정 시간을 빼서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동안의 노력한 것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연주하고 있다. 내 눈에 그러한 어우러짐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도 멋있고 대견하게 보였다.


한 해 동안 바빴을 텐데 힘들다는 티도 안 내고 이런 멋진 공연을 보여줘서 오히려 정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어느덧 마지막 연주가 시작됐다. 앵콜의 앵콜 연주다. 멋지게 당당하게 연주를 마친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케스트라'는 여러 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오케스트라'다. 아아들은 이 오케스트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모두 지휘자를 바라보며 함께 어우러져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못난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며 느낀 이 소중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남긴다. 아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다.


"아들, 네가 태어나고 아빠는 늘 너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야. 


오늘도 네 덕에 요즘 고민이던 회사생활에서 아빠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됐어. 


아빠도 회사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니 지휘자를 바라보며 지휘를 잘 따르며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멋진 연주를 잘 마쳐볼게. 


아빠의 인생이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말야!


 아들 정말 고마워. 오늘의 너의 모습, 오늘의 이 마음 깊이 새기고 간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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