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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0. 2024

우리의 협력적 주도성을 위한 자녀교육 성찰

협력적 주도성, 지금부터 키워나가야할까요?

 협력적 주도성, 지금부터 키워나가야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첫걸음으로, 성찰이 꼽힙니다. 자녀교육의 질이 나 자신의 자녀교육 역량을 넘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사교육에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나 자신의 교육역량과 아이의 주도성에 대하여 살피며 하루 하루의 동행을 빼곡이 채워나가야 합니다. 지금 잘못된 것이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를 탐색하며 자녀교육 방침을 세세히 다듬어야 하겠지요. 


 이 표는 우리의 자녀교육 성찰과 협력적 주도성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도식입니다. 과거에 대한 성찰, 현재의 실천, 미래의 비전을 하나로 통합되어 협력적 주도성을 형성합니다. 


 이 표를 바라볼 때 주의할 점은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동등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자녀교육 성찰이 과거에 과도하게 엮여있다면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나 미래에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들이 큰 제약을 받습니다. 반면에 과거와 미래 따위 고려하지 못하고 현재에만 집중해 자녀교육을 편다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할 수 없으며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 알지 못한채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됩니다. 또, 미래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지금의 우리 아이,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허황된 자녀교육이 횡행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문제현상 모두, 우리 교육현실에서 쉽게 발생하는 것들이지요. 


 그럼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성찰은 네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관계망이란, 우리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내게 주어진 사회적 관계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조력을 얻을 수 있고, 어떤 나쁜 영향들을 받는지를 두루 성찰하는 것이, 나의 자녀교육과 협력적 주도성을 밝혀가는데 필요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를 받고 있을까요?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의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받았을까요? 상당히 폭넓은 요소가 잠재의식처럼 우리의 교육관을 결정짓습니다. 


 다음은 자원입니다. 경제적 요소지요. 탄력성이 적습니다. 우리는 어떤 물질적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왔고, 지금 우리 아이를 위해 자원을 투자하고 있을까요? 앞으론 어떻게 아이의 교육비를 지출해야 할까요? 고민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탄력성이 적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오히려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넉넉하면 넉넉한대로 고정된 변수입니다. 그에 대해 더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자녀교육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면 됩니다. 자원과 함께 제시된 관계망, 문화, 우리 자신의 교육관 모두를 앞선 비중을 자원이 차지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들이 지닌 사회적 네트워크인 관계망은 탄력성이 큽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어 설명할 자녀교육 문화 역시 그렇습니다. 아이를 교육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으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풍성한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은 더욱 방심하지 않고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겠죠. 우리 아이들은 그런 가정의 자녀들과 경쟁을 하고 있으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관계망, 문화, 나 자신의 교육 역량 등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고 우리 아이의 성적을 개선시킬 방법이란 더 비싼 사교육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요?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은 탄력성이 적어 사실 우리의 협력적 주도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라는 형태로 간단히 자녀교육 문제를 타인에게 위탁할 수 있기 때문에 주요한 고민의 대상이 됩니다. 정작 해결의 단초는 다른 곳에 있는데 말입니다. 


 때문에 자녀교육에 있어서 문화와 관계망에 대한 투자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비록 실제로 풍성한 자녀교육 문화를 누리고 있는 가정들을 따라잡는 일이 어려워도, 학교교육과 각종 교육 정보를 통해 상당 부분은 보완이 됩니다. 따라잡아야 하는 커트라인이 높지 않다는 것이죠. 자원 투자에 집착해 비싼 사교육만 쫓는다 해서, 다른 부분들이 저절로 보완되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요소는 우리가 경험한, 지금 형성하고 있는 자녀교육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조금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념체계도 문화에 속하고, 매스미디어의 교육 소식들 역시 문화에 속합니다. 또 우리가 어떤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저소득층 가정이라고 해도 우리와 아이들이 민주적이고 상호존중에 기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가정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일상 속에서 같이 캠핑을 가서 가재를 잡고,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등의 풍성한 문화생활을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는 아이의 잠재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님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모아놓고 보면 단번에 어떤 집안의 어떤 문화 속에서 길러졌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죠. 좋은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난 아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칠 줄 알고, 성급하게 자기 이야기를 마구 하기 전에 경청할 줄 알고, 결국은 선생님들이 자기를 믿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참 귀하죠. 특히나 넉넉하지 않은 가정인데 저런 품성을 지닌 아이들이 참 곱습니다.


 좋은 문화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이미 풍성한 삶의 경륜을 갖고 학령기를 맞이합니다. 또래들보다 높은 지식 수준, 교양을 갖추고 수월하게 교육경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어떤 교육적 고민이 오가는지, 아이에게 어떤 배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하루 하루의 삶, 혹은 일상의 습관에 대하여 성찰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우리 자신입니다. 내 평생에 걸쳐 교육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지금 나는 자녀교육을 위해 어떤 노력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빼어난 전문지식이 없어도 신실하게 자녀교육에 헌신해온 분들이라 해도, 그것이 진정 옳은 길이었는지 다시 살펴보아야하겠죠. 협력적 주도성이란 단련, 실천을 통해 나 자신을 계속 재구성해나가는 것이 필수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학교공부에 대해, 내 삶에서 공부가 미친 영향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아이를 교육시킨 방식에 대해, 교육에 대해 책임감과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사교육의 힘을 되도록 빌리지 않고 나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며, 지금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네가지 요소, 관계와 자원, 문화와 나 자신의 교육관에 대하여 살폈다면 이제 밑준비가 된 것입니다. 성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실천 단계입니다. 나는 어떻게 자녀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시시각각 성찰하며 그 결과를 다시 현재에 반영해야 합니다. 즉, 성찰적 실천이 나 자신의 책임감, 공동체성, 단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의 나를 성찰하며 다시 새로운 실천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자기객관화 능력입니다. 과거의 대한 성찰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와 나의 미래를 바꾸자하는 우리의 의지는 지나간 일에 대한 반성을 돕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실천에 대한 성찰은 훨씬 어렵죠. 어떻게 내가 공부하고, 고생해서 자녀교육을 해나가고 있는데 지금 벌써,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고 반성을 할까요?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다른 사람은 잔소리를 하고, 우리 아이는 거부할까요? 이런 심리가 우리의 오늘에 대한 성찰을 막고 성찰적 실천을 멀어지게 합니다. 자기객관화가 필요하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칠 점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자녀교육을 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실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면, 그 다음으로 관계적 성찰과 실천입니다. 앞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나를 중심으로 한 성찰이 아니라 아이와 얼마나 마음을 열고 함께하는 동반자적 주도성을 구축해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입니다. 이 역시 우리 자신의 실천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진실된 자녀교육으로 지향하도록 하는 맹렬한 반성을 촉구하는 지침입니다. 


 과연 나와 아이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탓에 한번 정해진 자녀교육 방침을 쉽게 허물지 못하지요. 그러나 필요하다면 과감히 진로를 변경하고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의 길을 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결정이 어렵다면 아이와 함께 충분히 대화하고 옳은 길을 찾아야겠지요. 


 이와 같이 현재의 성찰적 실천은 구체적이고 정교화된 미래의 비전을 지향점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관계, 문화, 자원, 나와 자녀교육을 그리고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이 미래의 우리의 교육비전이 지금까지 성찰해온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그 어떤 미래도 과거, 현재와 단절된 채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고자 하는 미래가 있다면 과거에 대한 성찰, 현재의 성찰적 실천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떤 자녀교육 환경-관계망, 물질적 조건, 교육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다시 현재에 환류할 구체적 실천방안을 도출할 때야만이 협력적 주도성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학부모의 협력적 주도성은 이처럼 매우 복잡한 도식 아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성찰과 실천이 결합되어 이루어집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수준의 고민이 담기지 않으면 협력적 주도성으로서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확 난이도가 올라가죠?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실천에 이 모두가 이미 담겨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오늘을 사는 사람도 없고, 현재에 대한 냉정한 판단 없이 허황된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지요. 우리 자신의 양심, 지금까지의 노력을 믿고 자녀교육에 힘쓰시면서, 여유가 될 때 하나 하나를 점검하시면 됩니다. 시간은 많고, 급하게 가는 것보단 완벽하고 안전하게 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학원비가 문제가 될 때면 자원에대해 과거, 현재, 미래를 비교하여 성찰하며 새로운 실천방안을 모색하면 됩니다. 아이가 너무 딴짓을 많이 한다 하면, 우리 가정의 문화를 마찬가지로 성찰해봅니다. 이렇게 적절한 계기가 주어질 때마다 천천히, 다만 성실하게 해나가면 됩니다. 


 성찰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덕목입니다. 일말의 성찰조차 없이 아이의 자아를 억눌러가며 자녀교육이라는 불도저를 밀어붙이는 가정이, 오늘날까지 아직 많지요. 현재의 부족함을 대면했다면 우선 그것으로 오케이입니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자녀교육엔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것을 뜯어고치지 않고는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고치고 또 고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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