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른다.
글감이 문득 떠오르거나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도 쓴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두드리는 대로 내버려 둔다. 모니터 위 하얀 도화지에 까만 글씨가 채워져 간다. 고통스러운 마음의 소리, 섭섭한 마음, 차마 하지 못한 말과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애써 외면하고 감춰야 했던 생각과 억눌린 감정이 글로 표출되는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이 걸러지며 후련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 그날의 가감 없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마주한다. 글을 쓰던 그때의 내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지만 읽고 고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쓰인 글들을 다시 읽으며 어색한 부분을 수정해 가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수정되어 간다. '
'이때 이 말은 안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할걸', '이건 화낼만했지', '그 사람도 그럴만했지'라며 사람과 상황, 생각이 정리되면서 엉켜있던 실타래가 날실로 풀리 듯 내 마음도 풀리며 가지런해진다. 글을 고치는 과정이 맞춤법을 고치고,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말들을 찾아 가독성만을 좋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고 수정되며 타인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로하고 화해하는 자가 치유의 시간이 된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다.
글쓰기는 상담에서도 이용된다. 상담학 사전에 따르면 글쓰기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하거나 억압된 것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의식을 확장하고 통합시켜 표현하지 못하고 다가가지 못했던 것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글쓰기에 있어,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글을 쓰는 행위가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감정의 해방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쓴 글을 오픈해도 되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잘 쓰지 않아도 되고 한 페이지를 꼭 채울 필요도 없다. 글의 내용과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만큼만 쓰면 된다. 애써 외면하고 감춰야 했던 욕망과 생각, 억눌린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얻는 해방감은 견디면서 살아갈 힘이 되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