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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Sep 20. 2024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한 남자를 절절히 사랑하고, 오직 그만을 몰래 바라보며 살아간 여인. 남자가 모르게 아이를 낳았고, 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아이와 자기 존재를 밝히지 않은 여인. 그녀는 여러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한 남자의 모르는 여인으로 남았다.


어느 겨울, 밝은 눈과 귀여운 외모를 가진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가 죽었다.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사랑하는 아이가 죽자, 그녀도 죽음을 선택한다. 촛불이 꺼져가듯 마지막 숨결이 멎어가는 순간에 그녀는 있었던 모든 사실을 남자에게 고백한다. "저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라는 편지 상단의 글귀로 끝내 그녀는 모르는 여인으로 남는다.

 

추석 연휴 때 두 권의 짧은 책을 읽었다. 니콜라이 고골의『외투(1842)』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1922)』이다. 두 책이 발표된 시기가 인류 역사의 격변기이자 정신문화의 대변혁기였다. 두 권 다 주제가 무겁고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행히 단편 소설이라 읽기에 부담은 없고, 대신 여운은 오래 남는다.


고향 가는 열차 안에서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를 펼쳤다. 평소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은 133쪽의 분량에다 활자도 많지 않고, 삽화가 특히 예쁘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지만,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겪고 난 후 다시 읽었더니 감동이 그때와 사뭇 달랐다. 이 책 속의 여인은 오직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한 번도 밝히지 않은 채 끝내 그에게 모르는 여인으로 죽어간다. 그런 사랑이 있을까? 있다면 심정이 어떨까?


한 유명한 작가가 어느 날 ‘모르는 여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는 그가 알지 못하는 여인이 평생 그를 사랑해 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여인은 작가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랑했다. 소녀였던 그녀는 그의 곁을 맴돌며 가슴속에 사랑을 품었다. 그렇지만, 남자는 그런 사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성인이 되었고, 어른이 된 후에도 작가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와 밤을 보냈던 여인은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존재 역시 남자는 알지 못했다. 아이가 독감으로 죽자, 여인은 절망에 빠져 자기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고백한다.


남자는 기억에서 그녀를 꺼내려 하지만, 끝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스쳐 간 여인 중 누구인지 몰라 당황해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는 한 여인의 죽음과, 자신을 향한 그녀의 불멸의 사랑을 느낀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무언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고, 그제야 눈에 보이지 않는 안 여인의 모습을 애틋한 마음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여인의 헌신과 슬픔

이렇게 일방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본 적 있는가? 여자의 사랑은 고통과 그 안에 깃든 헌신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인은 지금까지 오로지 한 남자만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끝없이 순수하고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한 번도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존재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야기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상대방이 나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사랑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 사랑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여인의 사랑은 헌신적이었지만, 그녀의 사랑이 가리키는 비극적 현실은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녀의 일방적인 사랑은 끝내 고통과 허망함으로 남았고, 그 사랑은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만 존재했다.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츠바이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절대적 고독과 무력함이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인이 평생을 바쳐서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남자는 그 여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인가? 우린 누군가에 의지하고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했지만, 현실은 잔인하고 잔혹하다. 여인의 사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혼란과 잔혹함 속에서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과도 닮았다. 츠바이크는 이성과 도덕이 무너진 혼란 속에서 인간이 느낀 고립감과 불확실성을 절대적 사랑과 불멸의 사랑으로 상징화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헌신적 사랑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점점 더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츠바이크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헌신적 사랑의 비극적 아름다움에 있다. 여인의 사랑은 전쟁의 비극과 처참함 속에서 인간이 느낀 고립감과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대량 학살의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하며 삶의 목적을 찾으려 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끝없이 부조리한 현실에 갇히게 된다.


위험한 사랑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이에 따라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극에 달했다. 츠바이크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인의 일방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존재하는 고독과 무력함을 묘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과 사랑의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 발전과 SNS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물리적 거리는 더없이 좁아졌지만, 정작 사람들은 더 깊은 고독과 소외감을 경험한다. SNS상에서는 많은 ‘친구’가 있지만, 진정한 감정적 유대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이 느꼈던 고독과 헌신적 사랑은 오늘날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적 고립감과 상실감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현대인의 일방적이고 고립된 사랑은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에서 그려진 여인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 사랑의 상실과 외로움은 소실이 발간된 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깊이 존재하고 있다.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속에 담긴 사랑과 고독의 주제는 오늘날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만, 때로는 일방적이고 고독한 감정일 수 있다. 또한, 이 사랑은 인간의 고립감과 부조리한 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혼자 은둔하고 고립해서 일방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모르는 여인의 사랑은 무한한 헌신이지만, 끝내 그녀에게는 애틋한 슬픔과 상처로 남았다. 일방적인 사랑은 아무리 숭고해도 자칫하면 위험한 사랑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의 여인은 헌신으로 불멸의 사랑을 완성하려 한다. 츠바이크는 우리가 겪는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2024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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