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할까? 일주일에 두세 번은 달린다. 달리기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 시간 거리를 달리면 처음 30분은 몸이 적응하느라 힘들다. 몸이 완전히 풀리고 난 후 나머지 30분은 도취감을 맛본다. 러너스 하이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하늘을 나는 느낌과 같다"거나 "꽃밭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건 사실이다.
오늘도 달리기하러 아파트 정문을 나선다. 길은 두 갈래다. 왼쪽 길은 옛 마을의 정취가 남은 산길로 가는 길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하는 가을 산길은 풍경이 끝내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장지천(長芝川)을 따라 뛸 수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은 멀리 오산천으로 이어진다. 물길이 갈지(之)자로 구불구불 흐른다고 장지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책길로 잘 정비된 개울가에는 강아지풀을 앞세워 물옥잠이나 쑥부쟁이도 간간이 보인다.
오늘은 왼쪽 산길을 택한다. 언덕을 오르면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 시작된다. 자동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가는 좁은 골목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1970년의 어느 해쯤의 시간이 멈춘 집들이 나타난다. 통나무의 결이 여전한 낡은 나무 대문에는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하다. 낡은 고택인 그 집 담벼락 밑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파란 하늘과 코스모스는 꽤 잘 어울리는 가을 풍경이다. 대도시 주변에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군락지를 만나는 건 드문 행운이다.
아직 옛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장지동의 옛 마을 이야기다.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현대식 카페가 들어섰고, 한 눈으로 봐도 비싸게 보이는 한우 전문점도 있다. 아주 오래된 고택을 개조한 커피 전문점은 그나마 옛 모습을 살려 다행이다. 골목길을 돌아서면 쇠락하는 폐가가 있다. 참 신기하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집들은 종내에는 저절로 허물어진다.
마을에는 450살이 먹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다. 약 30미터 높이의 나무 둘레는 성인 남자가 양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을 만큼 크다. 나무는 수많은 사람이 태어났다가 자라고, 또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마을의 흥망성쇠와 변화를 목격한 산증인이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디며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고, 보호수로 지정된 지가 40년이 넘는다.
낡음과 새것, 과거와 현대가 함께하는 마을 풍경이다. 헌 집은 언제가 헐릴 것이다. 또 보호수인 느티나무도 언젠가는 자리를 옮기든지, 아니면 그 수명을 다할 것이다. 그땐 장지동 옛 마을의 풍경도 빛바랜 사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면 이 풍경을 그리워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마냥 개발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는 없을까? 현대화는 늘 그런 고민을 안겨 준다.
하늘은 조금씩 가는 비를 뿌린다.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찌뿌둥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원두를 곱게 내린 커피를 준비한다. 달리기할 때 허리에 차는 작은 백 주머니에 커피를 담는다. 무릎 위에서 아래까지 충분히 덮는 무릎 보호대까지 하고서는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산이라 해봐야 야트막한 구릉이라고 할까? 다행히 이곳까지는 아파트 회색 건물이 침범하지 않았다.
산길은 장지천을 뛰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 길도 울퉁불퉁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게 이어진다. 가끔 산골 논둑을 뛸 때면 신경이 쓰인다. 한 발 삐끗하면 발목을 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을 뗄 때마다 산골 풍경이 바뀌는 건 큰 재미다. 지금 같은 가을에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색 향연이 펼쳐진다. 대형 영화관에서도 보기 힘든, 날 것 그대로의 총천연색의 파노라마다. 그런 재미를 잊지 못해 가끔 산길을 뛰곤 한다.
산골에는 드문드문 폐가가 인다. 사람이 떠난 빈집은 곧 무너질 듯 위태롭다. 버려진 마당에는 잡초가 웃자랐다. 돌 볼 이 없는 빈 집은 곧 쓰러질 것이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은 제 모습을 잘 유지한다. 반대로 사람이 만든 인공의 미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쉬 퇴락한다. 안타까운 역설이다.
저 멀리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보인다. 그곳으로 내쳐 달렸다. 꽤 덩치가 있는 믹스견이 사납게 짖는다. 다행히 목줄에 묶여 있어 뛰쳐나올 일은 없다. 하기야 이 산골에 오는 이가 누가 있을까? 종일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곳에 낯선 이가 뛰어오니 개가 놀랄 만도 하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심정으로 목청 높여 짖는다. 녀석의 목소리가 조용한 산골에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산골 집 감나무에 감이 실하게 달였다. 노란색이 짙게 물든 걸 보니 농익어 간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뻗어 하나를 따고 싶다만, 눈길 사나운 개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돌어서오는 길가에 핀 하얀 구절초를 본다. 구름 짙은 하늘이라 쓸쓸한 가을 풍경이다. 고독하고 나른한 산골의 만추가 고즈넉이 졸고 있다.
산 중턱에는 전원주택이 몇 채 모여 있다. 집을 지은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하다. 넓은 앞마당에 있고, 집 뒤로는 텃밭도 보인다. 경치 좋은 산골에 자리한 전원생활이 보기만 해도 근사하다. 그렇지만, 집 마당에 자연을 품고 살려면 보통 부지런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철마다 손볼 곳이 어디 한둘일까. 그저 보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한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더 달리다가는 비에 흠뻑 젖을 판이다. 발길을 돌려 산에서 내려온다. 산 초입에는 누군가 정성스레 가꾼 텃밭이 있다. 하얀 속살이 실한 무와 금방이라도 양념을 버무리면 맛난 김치가 될 것 같은 풍성한 배추자 제철 만났다. 보라색 짙게 밴 가지와 빨간 고추도 한자리한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풍성한 가을이 가득할 것이다.
산길에 잇닿은 아파트 사이를 뛰어 내려온다. 낙엽 사이 벤치가 예쁜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러 편의점으로 들렀다. 가게 앞 파라솔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허리춤에 찬 커피를 마신다. 굳이 원두를 진하게 갈아 커피를 내린 까닭은 오늘같이 흐린 날에 기분을 돋우기 위해서다.
지나쳐 온 산골 마을 풍경이 생각나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을 듣는다. 헝가리안 무곡의 애수 어린 선율이 흐르자 뛰어온 옛 마을의 쓸쓸한 정취가 한층 깊어진다. 짙어가는 가을빛처럼 서정적이면서도, 집시 음악 특유의 열정이 담긴 곡이다. 선율은 조락하는 계절과 쇠락하는 산골 마을의 쓸쓸함을 담기에 더없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