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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10. 2024

 우리 생의 여명에서 블루 아워

어느 가을날 저녁  


밤과 낮의 경계선이 어딜까? 해가 뉘엿뉘엿 지면 서쪽 하늘은 석양으로 붉게 물든다. 우리는 해가 지면 바로 어둠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자연은 그렇게 급하게 변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변화는 더디고, 인내와 고통의 아름다움이 있다.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대기 중의 공기나 먼지에 산란한 빛이 남는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의 여린 빛, 즉 박명(트와일라잇, twilight)은 완전한 밤으로 가는 길목을 지킨다.



태양의 고도 0도는 해돋이와 해넘이의 분기점이다. 태양의 고도가 수평선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태양애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수평선과 일치하는 고도와 그 아래로 마이너스 18도가 되는 영역은 낮과 밤의 완충지역인 박명의 구간이다. 노을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남은 빛을 세상에 뿌린다. 태양의 고도가 마이너스 18로 떨어질 때까지 남은 빛의 농도도 단계적으로 묽어진다. 이런 까닭에 박명도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시민박명, 항해박명, 천문박명으로 구분한다.


노을의 반대편에는 여명이 있다. 해가 뜨는 순간에 짠하고 빛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돋이의 시간에는 해넘이와 거꾸로 박명의 순간이 지나야 비로소 밤과 낮이 자리바꿈을 한다.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는 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해돋이 현상이다. 이른 아침 동이 틀 무렵 해돋이는 수평선이 붉게 물드는 것은 수평선 아래의 태양 빛이 대기 중에서 산란한 것이다. 말하자면, 해가 솟을 때는 박명의 단계마다 빛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비로소 완전한 밝음이 등장하는 것이다.




밤과 낮이 바뀌는 순간에는 마법의 시간이 온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6도의 지점에 있을 때부터 수평선 아래로 4도의 구간에 있을 때가 바로 그 시간이다. 특히 태양이 수평선 위쪽 고도 6도 지점에 있을 때, 온 세상에 밝은 황금의 빛이 뿌려진다. 수평선 아래도 4도까지 내려간 태양은 그보다 짙은 무거운 황금색의 빛을 서쪽 하늘에 남긴다. 이 순간 하늘은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골든 아워(golden hour) 혹은 매직 아워(magic hour)가 된다.


깊은 가을 아침 6시 30분


동이 트는 새벽녘, 순결한 첫 빛이 세상을 비춘다. 서서히 어둠이 뒤로 물러나면 걷히면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여명이 나타난다. 주황색의 여린 빛은 도시의 회색 건물을 주황색으로 칠한다. 싸늘하고 냉철한 회색 도시가 잠시나마 부드럽고 따스한 얼굴을 하는 것이 이때이다. 해가 많이 떠오른 시간이라 짙은 여명이 옅어졌지만, 저 먼 하늘은 붉은색의 빛들이 아름답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은 온통 황금색 구름이다. 하얀 유리창은 온통 붉은색이 되고, 내 그림자도 신이 나 붉은 노을을 쫓는다. 솜씨 좋은 화가가 캔버스에 화려한 황금색을 칠하듯,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황금색이 온 세상을 밝게 채색한다. 가을이 한창 제 자리를 찾는 시간이라 저녁 6시 30분의 노을은 붉게 타고 있다.


밤과 낮 사이에 사색과 고독의 순간이 찾아온다. 신은 황금색 붓으로 하늘의 캔버스에 여명과 석양을 그린다. 해가 진다고 해서 곧바로 밤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해가 솟기 전에 미리 여린 빛을 세상에 먼저 뿌려준다. 그것이 바로 석양과 여명이다. 그 순간이 세상을 붉은색으로 아름답게 채색하는 매직 아워인 것이다.


이제 신비로운 파란빛의 시간이다. 해가 수평선 아래 4도에서 6도 사이로 더 깊이 내려가면, 세상은 신비로운 파란빛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이때가 바로 블루 아워(blue hour)다. 하늘은 깊고 청명한 남색으로 물들고, 대지는 부드러운 쪽빛 속에 잠긴다. 황금빛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온 이 푸른 시간은 세상이 깊은 침묵에 빠지는 고요함을 선사한다. 낮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밤도 아니다. 밤으로 가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 세상은 가장 몽환적인 파란빛으로 물든다.


골든 아워를 지난 태양은 블루아워에 도달한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솟아난 후, 한낮을 지나 서서히 서쪽 하늘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고 나서 완전히 밤이 찾아온다. 우리 인생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새벽녘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피어나는 여명은 마치 우리 인생의 시작과도 같다. 아직은 차갑고 서툴지만, 그 속에 품은 희망은 찬란하다. 청소년기의 설렘은 새벽녘 먼 하늘에서 피어나는 분홍빛 하늘을 닮았다.


청년의 시간은 봄날의 한낮처럼 자애롭고 따스하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이 시기는 생명력이 넘치고 매 순간이 눈부시다. 골든아워처럼 찾아오는 중년기는 인생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6도 지점에 있을 때의 부드러운 황금빛처럼, 중년의 시간은 원숙미로 세상을 물들인다. 강렬했던 한낮의 기운은 수그러들었지만, 대신 황금빛 지혜로 물든다.


아름다운 골든 아워와 신비로운 블루 아워의 시간은 노년을 위해 준비했다. 해가 수평선 아래 4도에서 6도 사이로 내려가면서 맞이하는 이 순간, 하늘은 깊고 청명한 남색으로 물들고 세상은 고요해진다. 하늘이 가장 짙은 청색으로 물들 때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노년의 시간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젊은 날의 강렬한 태양 빛에 가려 보지 못했던 작은 별들이, 골든 아워를 지나 블루 아워가 되어서야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짙은 어둠 속에 별이 빛나듯 노년에는 삶의 지혜가 빛난다. 짙은 파란색이 짙어지는 노년이 되면, 각자의 삶이 일구어낸 수많은 이야기가 영롱한 별처럼 빛난다. 별빛은 다음 세대에게 길잡이가 되고, 새로운 여명을 준비하는 빛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월의 흐름은 멈출 수 없고, 누구나 자신만의 여명과 블루 아워의 순간을 맞이한다. 봄의 여명도, 여름의 한낮도, 가을의 황혼도, 겨울 밤하늘의 별들도 모두 우리 인생을 수놓는 찬란한 빛이다. 그 빛은 또 다른 여명이 되어 세상을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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