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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Dec 07. 2023

내가 출근하는게 불쌍하다는 당신께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 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당신이 만든 그 우주 속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유영을 힘들게 하는건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그것은 사람입니다. 타인은 나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합니다. 나에게 의미 없는 타인이라면 아무 상관없지만 작게든 크게든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내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타인이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우주에 살아가지만 불행히도 나만의 우주라는 공간은 진짜 우주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공간이라 필연적으로 사람, 그것도 나와 다른 사람과도 공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의 우주를 유영하며 나와 결이 같고 나와 생각과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나누며 사랑하며 행복을 느끼지요. 그러나 가끔, 나와 아주 결이 다르고 부딪히기 싫은 사람들과도 엮여야 합니다.

 때로는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배경, 비슷한 나이라서 인생의 비슷한 시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호감을 가졌던 타인에게, 어랍쇼? 이걸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다고? 아 역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A는 저와 비슷한 또래이고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육아 동지였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비슷한 또래 육아를 하는 여성들은 마치 황제펭귄들처럼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게 되고 서로를 돕고 어떻게든 네트워킹을 하게 되는 거?

 생각해 보니 아이의 유아기 시기에 (특히 첫 아이) 부모는 마치 남극과 같은 극한의 지역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모든 것이 어렵고 모든 것이 새로워서 어리둥절해하는 동안은 나 혼자 바람 부는 차갑고 황량한 극지방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그러다 저기도 뒤뚱거리며 어떻게든 아기펭귄을 다리사이에 품고 있는 황제펭귄이 있다는 걸 알면 본능적으로 협력관계에 접어듭니다. 아기 엄마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돕고 뭉쳐야 육아기라는 이 척박하고 차가운 환경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걸 알거든요.


 우리는 그렇게 황제펭귄들처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는 저 차가운 남극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 하는 때가 닥쳤습니다. 두려웠습니다. A는 아비 펭귄이 물고기를 충분히 물어와 줬지만 저는 아비펭귄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철없게도 나는 인류애를 믿었기에 내가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는 동안, 내가 바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놓치게 되는 일들을 알려줄 거라고, 우리들은 그동안 같이 새끼를 품어왔으니 내 새끼가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 말려줄 거라고 믿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다르더라고요.


전업주부와 일하는 주부는 팽귄유치원에서의 위치가 변하게됩니다. 내가 차가운 바닷속에서 잡은 물고기를 그 집 아이가 좋아하는 롤케이크로 바꿔 선물해도 우리는 예전과 똑같지 않다는걸 A도 나도 느낍니다.


같은 학원을 다니며 같은 경로로 이동하던 아이들의 스케줄이 변했습니다. 그집 아이가 우리애와 같이 다니던 학원보다 더 좋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 곳에 딱 한자리만 남아 있었고 그쪽도 누군가가 추천해줘서 어렵게 얻은 자리였다더군요.그 좋은 학원의 자리는 누구나 탐내는자리라 내 아이의 자리까지는 얻을수 없었기에 아이들의 스케줄이 달라져서 더이상 같이 다닐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죠 받아들여야죠.

그런데 아이는 늘 함께 다니던 친구랑 함께할 수 없다는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나도 그학원에 끼워달라 조릅니다.

일하는 엄마에게 가장 힘든건 아이의 학원 문제와 아이의 교우관계입니다. 스스로 좋은 관계를 맺는법을 알기전에 사귀는 친구들은 거의 엄마들이 맺은 관계로 생긴 그룹안에서 사귀게 되기때문입니다.


어느날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 그룹 카톡방에 A는  "이 추운 날 새벽에 출근하느라 00 엄마 고생 많아, 나는 이런 추운 날에는 아침부터  일해야해서 부지런 떨어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더라"라는 워딩을 적어놨습니다.

내 두 눈을 의심 했습니다.

네? 뭐라 굽쇼??

이거 나를 저격하는건가요? 정말 진심으로 내가 불쌍하다 생각되서 이러는거면 무지한거고

나를 기분나쁘게 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이러는 거면 무례한건데? 


사실 이런 워딩은 나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나를 위한다는걸 알고있는 친정엄마에게 듣더라도 기분이 안좋을 만한 워딩인데?

당신의 생각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일이 불쌍한 일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침일찍 출근하러 가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인가요?

무엇보다 이런 생각은 우리 윗세대 어머님이나 아버님도 거의 이제는 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생각인데?


저는 하림이란 가수를 참 좋아하는데 그는 출국이나 사랑이 다른사랑으로 잊혀지네 같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장  아름다운 곡은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합니다. 라는 노래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하러 세상에 나아갈때 세상은 더 나아집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얼마나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데요.


남편이 충분히 벌어다 준다는 사실로 당신은 타인보다 우위에 있으며 타인을 감히 재단하고 평가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지요? 그래서 마침내 너는 불쌍하고 나는 행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자기 뜻대로 주물러지지 않는 남편이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에게서 오는 불만이 사라지나요? 누구도 그게 남편이나 자식이라도 본인이 조종 할 수 없는 독립된 인격체라는 그 사실을 스스로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걸 아직도 모르나요?

타인의 자식보다 내 자식이 더 좋은 학원에 다닌다던가,

타인의 남편보다 내 남편이 더 잘번다고 내 인생이 더 풍족해지는건 아니라는것, 삶은 그리 단편적이지  않다는건 예민하고 똑똑한 그대가 누구보다도 더 빨리 알아차렸을 것 같은데?


 그런데 말입니다. 전업주부 A가 자신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만, 타인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다. 자기남편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은 대단히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하자 저는 한 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됩니다. 


아줌마들의 모임은 주로 남편 성토대회 혹은 자식 성토대회로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그 성토의 장에서 그녀가 뜬금없이 맥락없이

"우리는 운 좋은 줄 알아야지 뭐, 그래도 남편덕에 사는데. 나는 그래서 남편이 아무리 뭐라 해도 한 귀로 듣고 한귀를 흘리면서 응 그래 그래 다 오빠 덕분이야 하면서 살아. 어쨌든 돈 벌어다 주잖아"라든가,

"00 엄마 한 달에 얼마나 버는데? 그거 없어도 살 수 있잖아? 왜 그리 힘들게 살아? 힘들면 남편한테 못하겠다고 하고 일 때려치워"라든가

 "XX가 이번에 가방샀던데 나도 하나 사려고. 우리 오빠한테 사달라고 하지뭐. 너도 그거 사라. 아니 말나온 김에 우리 그냥 다 같이사자. 00엄마도, XX엄마도 다 있다고 하면 나도 산다고 해도 남편이 뭐라 못할껄?"

"CC엄마도 남편이 뭐라해도 참아. 싸우지말고 화내지말고 어쨌든 돈벌어주잖냐? 돈벌어다 주는 사람 말 들어야지. 남편말 듣고 참았다가, 기분나쁘면 백화점 가서 뭐 하나 사버려"하는 말들을 배설하기 시작하자

아, 저분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풀지못한 불안이나 불만을 이렇게 해소하는 것인가? 하는 의혹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 귀한 시간 내서 기분좋게 맥주한잔 하며 제 101 회 남편 성토대회를 시작했는데 저분은 왜 맥락없이 이 대회의 취지도 이해못하고 출전해서는 남편자랑을 하거나 남편에 대해 성토하는 다른 여자들에게 무조건 참으라하며 분위기를 파토내는 것인가?


나는 그런 성토대회 끝에 얼큰 취해서 집에 들어가면 내가 지킨 내 가족 내가 꾸린 내 가정이 너무나 소중하고 내 자리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따숩고 아늑해서 눈물이 납니다. 살아오길 잘했다. 열심히 살길 잘했다. 나에겐 토끼같은 새끼들과 개 같은 남편이 있다는게 참 좋구나 싶어서 흥얼거립니다.


사실 이 대회에 모여 제 101회 남편 자식 성토에 누구보다 열렬히 참가한 그녀들 모두 맥주 한잔에 쌓아두었던 남편흉을 보지만 그녀들 모두 나와 같이 진심으로 자신이 꾸린 가정을 사랑하고 그 가정을 함께 꾸려가는 각자의 파트너를 존중하며 자신이 속한 삶과 생활, 자기의 바로 그 자리에 감사하며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A는 그 사실을 이해 못하고 그런 자리에서 조차도 자신은 자신의 남편을 만나서 온실속의 화초로 살고 있다고, 계속 그렇게 살기위해 자신의 모든 욕망 야망은 포기한게 만족스럽다고 얘기할까요? 온실밖 잡초처럼 사는 너희들이 불쌍해, 따뜻한 온실속 나의 세상이 전부야 라고 주장하며 이대로 매일 아침, 가족 모두가 나간 집에서 혼자 드라마를 보며 드라마속 얼굴 천재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자신의 안온함이 우월하다고 주장할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드라마속 얼굴천재 남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차가운 현실 바닷속에서 진짜 천재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드글거리거든요.


나의 우주는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뭘 포기한 지도 모르고 자기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는 어느 순간엔 부족하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대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안온한 일상이 지루해 죽겠다고 무언가 불만인데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 내 남편은 돈을 잘벌어다 주는데 왜 내가 이리 사는게 재미없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하며 오늘도 얼굴천재 남자배우와 사랑에 빠져 이대로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전업주부 A가 그 사실을 직면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녀의 우주는 좁고 확장이 안될지도 모르고 그 확장 안 되는 폐쇄성이 그녀를 행복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녀가 충분히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무한히 확장 가능성 있는 우주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 힘들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를 넓혀가는데서 기쁨을 느낀다는 점은 성장 욕구가 있는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전업주부 A에게 가장 의미 있는 타인인 남편도 자식도 어느 순간에는 시들해지고 그녀의 우주에 그녀만 남아있을 때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나도 조금 더 젊고 힘이 있을 때 가방 이나 미용시술 말고 다른 의미를 찾아 내 우주를 채워 놓을걸 그랬나 하고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고 그녀의 아쉬움으로 남는 거죠.


그러므로 그녀도 우리 모두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빌어 봅니다. 당신이 아는 행복은 타인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아는 불행은 타인에게는 불행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나는 이제 우리가 짧은 시간 이였지만 같은 극지에서 같은 바람을 이겨낸 추억을 공유한 팽귄이라는 사실만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우리가 연대했던 그 짧은 순간, 우리의 커다란 등으로  아기팽귄들의 바람을 막아줬던 그때 참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녀에게 누군가와 연대 하는 그 놀라운 기쁨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저 차가운 바다에 나가봤더니 무서운 포식자도 있었지만 깊고 새롭고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들이 있었고 그속을 헤엄치는게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언젠가 아빠 팽귄이 물어다주는 물고기에만 만족하지 말고 직접 저 바다에 뛰어들어보면 좋겠다고 말하겠습니다.


나의 우주를 유영하며 결이 같은 사람도 결이 다른 사람도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과 기억들로 내 우주는 확장되어 갑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국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힘으로 확장되어가는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충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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