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간에 누가 시작과 끝이라는 순서를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평행선을 살아간다는 건 마치 블랙홀과도 같을 테니까요.
12월, 우리는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한 해를 시작해야 하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일상들의 연속인데 왠지 한해의 끝에만 서면 조금은 엄숙해지면서 자꾸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 내 나이에 한 살을 더했던 낯선 숫자에 이제야 조금 익숙해지려 하는데 거기에 또 한 살을 더한 나이를 기억하며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해, 또 한해를 지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도 깜짝 놀랄 나이를 가진 내가 되겠지요.
내 안에는 아직도 십대, 이십대, 삼십대의 ‘나’가 그대로 살아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오십대, 육십 대인 나를 발견하는 일은 정말 낯설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명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수명은 점점 늘어나 선조들이 나이에 대해 말하던 뜻과는 조금 변형된 부분도 없지 않으나 몇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옛 선현들이 나이에 부여한 의미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그것이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15세를 ‘지학志學’이라고 해서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라고 했습니다. 20세는 ‘약관弱冠’으로 갓을 쓰고 어른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고 30세는 ‘이립而立’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40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불혹不惑’으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50세는 ‘지천명知天命’으로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말하자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는 나이를 말하고, 60세는 ‘이순耳順’으로 어떤 말도 순화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70세는 ‘종심從心’으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고희古稀는 두보의 시 ‘곡강曲江’의 한 구절로 ‘人生七十古來稀’ 즉 사람이 태어나 70세가 되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71세는 ‘망팔望八’로 이제 팔십을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고, 81세는 반수半壽 또는 망구望九라는 뜻으로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할망구’라고 할 때의 ‘망구’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이밖에도 91세는 망백望百, 99세는 백수白壽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은 자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이에 맞는 행동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지는데, 문득 그 의미는 예부터 나이에 부여했던 이런 의미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닐까….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앉는 휴일 저녁, 창가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