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91. 기타 등등·其他 等等

‘기타 등등·其他 等等’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 하나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 외에도 다른 비슷한 것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것들을 길게 나열해야 하는 경우 우리는 흔히 가장 대표적인 것만 내세우고 나머지는 ‘등·等’으로 처리하곤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그 ‘등·等’에는 수많은 것들이 함축돼 있을 테지요.


‘사과·배·딸기·복숭아·포도·귤’은 흔히 ‘사과 등의 과일’이라고 묶어 표현합니다. 사과를 편의상 앞에 내세웠을 뿐 ‘등·等’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찾으려고만 한다면,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과일들이 숨어 있는지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표적으로 드러난 ‘사과’ 외에 다른 것들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일이 있겠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때문에 대표적으로 내세운 사과와 숨어있는 딸기는 맛과 모양이 확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딸기는 ‘등·等’이라는 말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만일 그 ‘등·等’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사과와는 전혀 다른 맛과 모양을 가진 과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텐데 말이지요.


세상에는 참 많은 ‘등·等’이 있습니다. 장애인으로 대변되는 ‘등·等’, 노인으로 대변되는 ‘등·等’, 저소득층으로 대변되는 ‘등·等’, 다문화로 대변되는 ‘등·等’…, 그 수많은 ‘등·等’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까요.


지난 몇 달 동안 이 ‘등·等’이라는 말에 오래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앞에 드러난 대표성에만 머무느라 자주 잊고 지냈던 것들, ‘등·等’이라는 말로 묶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렸던 그 많은 존재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마도 지난 한 해는 그 수많은 ‘등·等’들이 수천수만의 ‘등·燈’으로 살아있음을 표현했던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시인은 우리가 흔히 생략해버리는 ‘등·等’을 ‘비주류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이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결코 세상을 이끄는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존재들, 대표자들 멋대로 ‘등·等’이라는 말에 묶어 자주 지워버리곤 했던 그 존재들의 울음이 가득했던 지난 한 해.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시 2017년이라는 새로운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는 자주 ‘등·等’으로 묶여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개별적인 존재를 드러내려 해도 콘크리트같이 버티고 서 있는 ‘등·等’을 뚫고 나오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촛불처럼 잔잔하게 ‘등·燈’을 밝힐 것입니다. 딸기처럼, 오렌지처럼, 포도처럼, 각각의 개성으로 살아 숨 쉬며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등·等’이 가진 함축적인 이름이니까요.


‘등·等’은 결코 죽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다양한 개성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등·等’으로 생략당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세상,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은 2017년이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아닐까요.     

이전 20화 112. 상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