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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09. 2021

최고의 보약, 잘 먹는 법


한의원집 딸내미는 한약을 매일 먹을까?


한의사이신 아빠는 한약 대신 매일같이 강조하시는 게 있었다.


"밥 잘 먹어야 된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그게 보약이지.


우리의 일상에서 기본에 충실하면 몸이 탈 날 일 없으니, 밥이 보약이란 말은 정말이다.


그리고 아빠는 삼시 세끼 '보약'을 잘 먹는 법을 몸소 보여주셨다.


 

밥을 먹어야지 밥을


아빠는 오로지 밥만 드시는 편이었다. 간식을 잘 드시지 않는다. 엄마는 과일이랑 감자, 옥수수 같은 걸 좋아하셔서 밥 먹고 나서 어서 (과일, 감자, 옥수수 등을) 먹어야 된다며 설레 하시곤 했는데, 아빠는 그런 엄마를 가끔 타박하셨다. 내가 수시로 간식을 주워 먹으면서 다이어트한답시고 저녁밥을 몇 숟갈로만 먹으면, 그것 또한 아빠는 쯧쯧 혀를 차시곤 했다.


왜냐하면 아빠는 기본, 즉 삼시세끼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정작 먹어야 할 밥은 안 먹고, 조금만 먹고, 그러고 나서 중간중간 간식으로 배 채우게 되면 항상 배가 불러있어서 또 밥을 안 먹게 된다는 것이다. 먹어야 할 때 먹고 위장을 쉬게 해 줘야 한다고 하셨다.


아빠는 밥도 흰쌀밥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 뜻은 '밥은 잘 안 먹으면서' 건강 생각한답시고 현미잡곡밥을 해 먹는 것도 부질없다는 말이다. 동생은 귀가 얇아서 매일같이 "이게 좋대요, 저게 좋대요" 영양제 타령을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비타민이니 유산균이니 이것저것 챙겨 먹는 것도 '밥도 잘 안 먹는데' 쓸데없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셨다. 그건 보약도 마찬가지였다.



건강한 식재료


주말이면 아빠의 취미는 장날이면 시장에 가거나, 식자재 마트에 가시는 것이다. 아빠는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손으로 고를 수 있는 곳을 선호하셨다. 과일이니 땅콩이니 아빠는 손수 고르실 때마다 매의 눈으로 색깔, 모양, 냄새 등으로 상태를 파악하고 상인이나 점원 분에게 언제 들어왔는지 물으시면서 한참을 신선한 것들로 골라내느라 시간을 보내시곤 했다. 결과적으로 아빠가 고른 것들은 모두 '믿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가끔 아빠는 약재로 쓰기 위해 생강 등을 마트에서 직접 사셨는데, 그때는 그 신중함이 더욱 배가되곤 하셨다.


특히 아빠가 단골로 사 오시는 식재료는 단연 버섯이었다. 항상 우리 집 냉장고엔 버섯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양파도 참 많이 사셨다. 육수를 내거나 어디든지 (단) 맛을 내기 위해 아빠는 양파를 정말 많이 넣으셨다. (엄마가 설탕 대신 넣으시는 매실엑기스도 지양하시는 편이었다.) 채소는 아빠가 말씀하지 않아도 엄마가 좋아하셔서 우리 집엔 언제나 채소가 많았다.


또 우리 집은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주로 사는 건 생선이나 돼지고기, 닭고기였다. 소고기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아빠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건강에 좋을 거라고 하셨다. 중요한 건 고기를 잘 구워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생선도 구이 말고 찌개를 위주로 요리해 먹고,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주로 돼지고기 수육이나 백숙이 가장 사치스러운 고기 음식이었다. 정말이지 우리 가족끼리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간 적은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다.




 집밥 중심


하도 집에서 좋은 식재료로 밥해먹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우리 집은 외식 한번 하기가 힘들었다. 어디 놀러 나가서 밖에서 뭘 사 먹으려고 해도,


"점심때 냉면 먹을까?(아빠)" "오. 갈비탕은 어때요?(나)" "맛있겠네.(엄마)" "냉면은 맛있는데 끝 맛이 너무 달더라고요.(나)" "근데 갈비탕 좀 느끼하더라.(엄마)" "맞아. 좀 질리더라고요.(나)" "........." "칼국수 집은 어때?(아빠)" "좋죠. 거기 칼국수집 말씀하시는 거죠? 만두는 시키지 마요. 너무 기름져서(나)" "국물도 좀 짜더라.(엄마)" "그래. 저번에 보니까 너무 짰어.(아빠)" "........." "뭐 먹지(나)." "냉면도 좋고 갈비탕도 좋고 칼국수도 좋고.(엄마)" ".........." "그냥 집에 가서 먹을까?(아빠)" "아이고. 네네네!(나)"


자주 실패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 먹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우리 가족 입맛에는 너무 짜다. 감자탕이나 전골 그릇에 나오는 칼국수 같은 걸 먹으러 가면 한 숟갈 간을 본 뒤 백발백중 우리 가족은 눈을 마주치고 행동을 개시한다. 아빠는 항상 국물을 한 대접 훌쩍 덜어내고 그 대신 물을 떠 오라고 하신다. 그렇게 물을 한참 더 부어야 어느 정도 간이 맞을까 말까다. 왠지 모르게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보게 되느라 우리 가족의 일사불란한 행동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매번 집밥으로 회귀하는 덕분에 엄마가 고생이실 것 같지만, 사실 주말 요리는 아빠가 거의 주도하셨다. 아빠의 요리 비법은 대부분이 '야채 야채 국물' 요리다. 단골 메뉴는 동태찌개. 엄마가 다시를 낸 국물에 또 무와 파를 집채만큼 썰어 넣고 푹 끓이고 새벽 장에서 사 와 얼려놓은 동태를 넣는다. 칼칼하게 고춧가루 넣고 한참 뚜껑을 열고 끓이면 완성~!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아빠표 동태찌개. 사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가끔 객지 생활할 때면 이 담백한 맛의 동태찌개가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이렇게 아빠의 '밥이 보약'이라는 신조 덕분에, 나도 어렸을 적부터 이런 입맛에 길들여지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어지간하면 아침을 챙겨먹고 밖에 나가서 사 먹을 때에도 무조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뭘 먹어도 결국에는 한식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입맛이 담백해서 뭘 먹어도 짜고 자극적이라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뭘 먹기가 힘들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우리 집은 그 흔한 배달도 시켜먹지 않아 나도 지금까지 배달어플 하나 없는 게 자랑이고 (첫 주문 할인받으려고 한번 깔았다가 그 뒤로는 한 번도 쓰지 않아 지웠다.) 남들 다 먹는 비타민도 굳이 먹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그 대신 열심히 채소나 샐러드를 챙겨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고 건강에도 좋을 거란 믿음이 있다.


아빠는 이렇게 밥을 잘 먹으면 보약도 필요 없고 건강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내가 이때까지 건강한 식습관으로 병치레 없이 잘 지내는 걸 보면 맞는 말씀이다. 아마 아빠는 한의원이 안 돼도 좋으니 사람들이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아빠의 소원이실 것만 같다.


누구든지 혹시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 한의사 집 딸내미는 보약 대신 밥 잘 먹습니다 여러부운~!




나도 느끼지만 밥 잘 먹기란 정말 힘들다.

하지만 매일 영양제 챙겨 먹으려는 정성이 있다면, 
차라리 밥을 잘 챙겨 먹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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