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찬영 Jan 07. 2024

매트 위에서 갈매기를 직면하다

새만 보면 정신을 놓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일명 새 공포증을 앓고 있는 이 친구와 한 번은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서야 깨달은 사실. 바닷가에는 갈매기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꺄악'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친구. 갈매기가 날개를 푸득이면 친구는 소리를 지르며 저 멀리 도망갔다. 나는 계획에 없던 고독을 즐기며 바닷가를 걸었고, 친구는 내내 갈매기와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30분을 걸었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인근의 카페로 피신했다.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바다에 온 소감을 물었는데, 그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미안. 솔직히 갈매기를 보느라 바다는 하나도 못 봤어.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바닷가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며, 갈매기처럼 자신이 싫어하는 것만 쳐다보는 순간 말이다.


그 불안을 잊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행동을 한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고, 어떤 사람을 초콜릿을 먹고, 어떤 사람은 예술로 승화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신다.


문제적 음주자의 자녀들이 빠진 늪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문제음주자의 자녀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 일 때, 자녀가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은 일반 가정의 자녀보다 4배 이상 높다. 문제 음주자의 자녀는 흡연이나 음주, 과식과 같은 회피적 대처를 많이 사용한다고 보고되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남성 자녀는 알코올을 남용할 가능성이 크고 여성 자녀는 음식을 남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혜현, 전영민, 한명호, 부모의 문제음주가 자녀의 폭식에 미치는 영향: 성인아이성향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건강), 2008


우리의 삶은 '불안을 어떻게 다루는가'로 결정된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단 한 가지의 것이 있다면 역시나 '불안을 다루는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적 음주자의 자녀들은 불안을 견디는 과정을 배우지 못한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무언가를 '입'에 넣는 과정이 자동적으로 인식된다.


그 광경 속에서 생각해 본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지만 동시에 열리는 냉장고의 문. 이윽고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온갖 음식물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것이 아쉬탕가 요가였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극강의 운동량은 내 정신을 완전히 혼비백산으로 만들었다. 운동 후 오히려 음식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하지만 아쉬탕가 요가가 준 선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매트 위에 홀로 선 나 자신. 끊임없이 흐르는 몸과, 그 몸을 타고 올라오는 수많은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사실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견딜 힘이 없어 음식이라는 쾌락으로 피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수련 중에 찾아오는 고통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분명 견디기 힘들지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 고통을 세세하게 쪼개어 볼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 사실은 그 고통이 생각보다 그렇게 거대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 아쉬탕가 요가의 힘, 키노 맥그레거


요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그 고통을 온전히 느껴야 하는 게 싫어서'라고 말한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느린 속도로 운동을 하니 고통이 너무나 잘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나에게 오는 모든 감각, 감정, 심지어 고통과 불안까지도 직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 땅 위에 발가벗고 서 있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 '음식'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감정에 압도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음식인 이유가, 다름 아닌 나의 가정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기법.

‘감각운동 심리치료'.


이 기법은 '언어'나 '인지' 등으로 다가가는 기존의 치료기법과 달리, '몸'으로 다가가는 치료 방법이다. 학계에서도 매우 최근에야 연구가 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요가에 푹 빠진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워 보이는 방법이었다.


과연, 이 기법은 나를 치유해 줄 수 있을까? 30년이라는 기나긴 상처의 시간을, 다시 되돌려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렇게 살며시 몸이라는 문을 열어본다. 수많은 상처와, 불안과, 분노가 가득한 그곳.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희망들이 가득한 그곳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