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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영 Jan 21. 2024

요가가 조작된 실험이 되지 않기 위해


아니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목이 아픈 게 당연하죠.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야 해요.


10년 전, 두통이 너무 심해 이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엑스레이를 찍은 정형외과 의사는 하루동안 얼마나 오래 앉아있냐고 물었다.


"음... 한 번에 4시간 정도는 앉아있는 것 같아요."


의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면 머리가 아픈 게 당연하다고.


움직이는 것이 싫었다. 학창시절 체육 시간만 되면 어떻게 벤치에 앉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체육 점수는 9등급. 학교를 안 나오는 학생들이 받는다는 점수를, 개근상까지 받은 사람이 받았다.


그때는 단순히 '운동 신경'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혹은 타고나길 게으른가 보다라고.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한 동물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럴 때마다 엄마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길 좋아한 이유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내가 움직이는 것을 누가 싫어했단 말인가?


몸은 삶의 경험이 형상화되어 드러나는 감정의 본질적인 춤 essential dance이 그려져 있다. 이들에게 형성된 누군가의 몸을 관찰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만든 유전적 요인, 사회적 요인, 그리고 개인적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 감정 해부학, Stanley keleman


그건 바로 '과거의 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웠다. 광활한 대지에 가슴을 활짝 펴고, 세상을 누비는 것이.


겪어온 상처는 고스란히 몸에 기록된다. 처음 상처를 받은 날에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고, 살짝 경직된다. 이때 눈은 커지고, 가슴이 올라가고, 다리는 벌어진다. 그리고 상처가 사라지면 다시 긴장이 풀려 편안한 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또 한 번 상처를 받은 사람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몸을 경직시키며 배에 가득 힘을 주고 입과 손을 다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점점 몸의 구조가 해체된다.


그러다 분노가 더 이상 소용이 없을 때, 그는 결국 무너진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위축된 마음처럼 온몸이 말리기 시작한다. 목과 어깨는 점점 쳐지고, 가슴은 내려오며, 다리까지 굽어진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한 심리 실험이 하나 있다. "파워 포즈Power Pose"라고 불리는 이 연구는, 사람이 자신감이 넘치는 포즈를 취하기만 해도 마음가짐은 물론 호르몬까지 달라진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러한 자세를 만든 것은 그럴만한 사건이 있어서다. 마음이 겪은 아주 강렬한 사건들을, 세포 하나하나가 모조리 기억해 만든 것이 그런 자세다. 다시 말해 몸을 바꾼다고 마음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 연구는 debunked, 즉 조작된 실험이라는 의문을 제기받았다. 사실 나도 자신감 넘치는 자세가 일시적으로는 자신감 있는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10분만 지나도 알 것이다. 우리의 가슴은 다시 안으로 안으로, 말려들 것이라는 걸.


거북목 판정을 받고, 이대론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유튜브에 '스트레칭'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약 10년 동안 요가, 필라테스, 헬스 등을 하며 운동의 세계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두통은 사라졌고, 삶의 질은 높아졌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안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가슴을 펴야지 생각하고, 10분이 지나면 다시 책을 읽으러 책상에 앉아 거북이가 되어 있었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처음 유입된 시점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는 이물질과 같다.

-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기억은 몸 구석구석 박혀있어 아주 날카로운 핀셋으로 떼어내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물질을 정확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세상을 향해 보란 듯이 가슴을 펴고 사는 일은,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꽤나 절망적이고 단언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을 달고 사는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리고 그 인생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라고 어찌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운동을 좋아해 조기 축구도 활발히 참여하고, 남다른 유머 감각과 따뜻함으로 영업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빛나는 재능이 세상으로 드러날만하면, 해결되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이내 집으로 들어와 기울이던 술잔.  




어린 시절의 상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깊은 수치심. 그것들은 좋은 자세를 취한다고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요가를 시작했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그랬다. 아마 치유의 효과가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가가 단순히 자세의 완성을 목표로 할 때, 이는 'Power pose'와 다를 바 없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뿌리를 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드는 느낌. 가슴 깊은 곳이 텅 비어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존재 자체가 따뜻하게 감싸 안겨지는 느낌이 드는지 살펴보자.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는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야 할 차례이다. 지금껏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하지만 누구보다 나의 이야기를 잘 간직하고 있었던 몸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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