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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비밀 투표(2)

 임 계장은 좀 양면적인 특징을 갖고 있어요. 내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좀 자주 접하게 되는 팀원인데 일단 본인 책상의 코디가 남다르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데 포스트잇은 왜 그렇게 많이 붙여놓았는지 누가 보면 일은 혼자 다하는 줄 알거에요. 혹 그걸 노렸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질서정연하게 작은 포스트잇이 사각모니터를 빙 둘러 빼곡하게 붙어있고 깔끔하고 귀여운 가습기가 책상 구석에서 항상 퐁퐁퐁 습기를 내뿜고 있어요. 모니터 배경화면에도 업무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정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워크홀릭으로 착각할 정도랍니다. 그러나 워크홀릭은 웬걸, 보통사람의 업무시작이 9시라면 이 분은 10시가 업무시작시간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아침 한 시간은 정기적으로 외부 휴게실에 나가 전화업무로 시작한답니다. 그 전화가 업무인지 개인용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상급자인 최 팀장의 비위를 잘 맞추어 그에게는 인정받고 있지만 나머지 팀원들로부터는 업무를 미루는 성격 탓에 원성을 사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임 계장도 처음에는 최 팀장과 대립했지만 그의 성격을 파악한 후로는 전략을 바꾸어 그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으로 방향을 튼 듯 싶어요. 특히 골프에 푹 빠진 최 팀장을 공략해서 라운딩을 부킹하고 동반 플레이를 하거나 스크린 회동을 하면서 부쩍 최 팀장의 마음을 사게 되었죠. 임 계장은 때때로 팀원들의 원성을 무마시키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타고난 천성인지 팀원 전체에게 커피나 식사를 사기도 한답니다. 약삭빠른 성격 외로 여직원들에게는 의외로 자상한 면도 있어서 나도 사실, 몇 번 맛있는 공짜 점심의 혜택을 받았답니다. ㅎㅎ. 그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정신적인 면보다는 물질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한답니다.       

 자, 벌써 나를 포함하면 우리 팀원의 반 이상을 소개했네요, 우리 팀은 모두 7명이에요. 맨 꼭대기에 최 팀장이 있고 그 양옆으로 방금 소개한 임 계장, 임 계장의 라이벌 격인 남 계장. 나머지는 모두 도토리 키재기 직급이니 그냥 쫄다구 아니 주임...나를 포함한 주임이 4명해서 7명입니다. 의아해 할지 모르겠지만 손 주임님도 쫄다구에요. 늦깎이로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고 했잖아요? 우리 회사에는 예외가 없답니다. 원칙에 의해 입사 연차에 따라 승급과 진급이 이루어지는 공정한 인사방식을 가지고 있답니다. 다른 팀들은 팀장과 계장을 제외하면 연령대가 비슷한 팀원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데 우리 팀은 정말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층 버라이어티한 성깔과 사건들을 일으키며 하루하루 생활이 다른 팀보다 다채롭답니다. 나를 제외하면 이미 소개한 최 팀장, 손 주임님, 임 계장은 모두 50을 넘은 꼰대들이고요. 나머지 3명도 신규직원인 정 주임을 빼면 40대 중반의 준 꼰대들이에요 ㅋㅋ 근데 미리 밝혀두지만 내가 이 팀에 와서 확실히 느낀 건데, 꼰대냐 아니냐는 나이순이 아니더라구요. 젊은 꼰대도 많고 나이 든 청년도 많다는 거, 보편적인 것에는 특수한 예외가 있기 마련인가 봐요.       

 이제 나머지 팀원들도 마저 소개해 볼게요. 

요즘 들어 우리 팀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주임을 소개합니다. 이 주임은 손 주임님과 짝꿍인데 나는 둘이 죽이 맞아 떠드는 소리를  귀담아 경청하는 편입니다. 아주 재밌거든요. 레퍼토리도 다양하답니다. 간혹 내가 못 듣는 줄 아는지 혹 들으라고 하는 건지 여성에 대한 기호를 거침없이 피력하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옆 팀에서 특이한 소리를 내는 이상한 직원들 목소리를 흉내 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참, 누가 보면 두 사람의 나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한 짓을 해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재밌어서 귀 기울이게 되고 나도 끼어들어 요절복통 웃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우리 팀에서 나를 가장 배려해주는 팀원이기도 합니다. 

 이 주임도 손 주임님 만큼은 아니지만 늦깎이로 회사에 들어와서 나이에 비해 직급이 높지 않아요. 그러나 업무 능력만큼은 내가 보기에 가장 출중하지 않나 싶어요. 단지 흠이라면 너무 시끄럽다는 거. 가끔 업무협조를 위해 내가 다른 팀에 가 있을 때에도 그의 전화소리는 내 귀에 들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과 전체가 알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가장 많은 일을 하면서 팀장에게는 가장 싫은 소리를 많이 듣는 이 주임은 그의 밥입니다. 그렇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고 가끔 자기 소리를 내며 대들기도 하는데 임팩트가 그리 커 보이진 않습니다. 이 주임은 조만간 휴직을 낼 예정이라고 하네요. 맞벌이 아내가 이 주임보다 벌이가 좋아 이 주임이 휴직하여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 현명한 상황이 되어 버린 거 같아요. 암튼 시끄럽고 분주한 성격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이 주임이 휴직 계획을 선포하면서 우리 팀에 곪아 있던 문제가 터져버렸습니다. 이 주임이 맡고 있던 상당한 양의 일이 인원충원 없이 현재인원에게 모두 배분되어야 하는 거였죠.

그 불똥의 파장은 손 주임님에게로 가장 크게 튀었는데요. 이 주임의 대체 업무자가 손 주임님이었기 때문이었죠. 손 주임님은 대체 업무자라고 해당 업무를 다 떠맡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이 합리적인 듯 보였는데, 문제는 이 주임 업무의 대부분이 임 계장의 업무와 연관이 있어 임 계장이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 적절해 보였지만 그는 업무를 맡는 것을 거부한 거죠.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조정하고 교통정리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최 팀장이 임 계장의 입장을 옹호하며 방임한 것이었죠. 좀 체로 화를 내지 않는 손 주임님은 크게 분개하며 또 한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난 이런 업무분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리치며 점심메뉴를 고를 때나 보였던 진지함을 드러냈던 것이죠. 다른 팀원들은 끼어들었다가는 괜히 그 업무의 일부가 자기에게 떨어지는 불똥으로 튈까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최 팀장은 그의 비굴함을 또 한번 드러내며 말도 안되는 해결책을 제시했죠. 이건 당사자들이 회의로 해결하라나 뭐라나. 

 이튿날, 감정을 좀 가라앉힌 상태에서 팀원들이 모두 모여 회의가 열렸고 최 팀장은 팔짱을 끼고 뒤에서 관망하고 있었죠. 손 주임님과 임 계장이 주로 연루된 문제라 다른 팀원도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매우 불평등한 조약으로 회의는 끝나버렸어요. 손 주임님이 업무의 약 8할을 분배받고 끝난 거죠. 내가 보기에 손 주임님은 분루를 삼키는 듯 보였는데, 그 표정은 과다업무에 대한 걱정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억울함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의 얼굴이었죠. 나는 속으로 말했어요. 손 주임님, 조직의 부조리함은 바깥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아시겠죠? 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냈죠. 이 일로 인해 손 주임님은 최 팀장과는 완전히 틀어졌고 임 계장과도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누구를 소개 안했죠? 아 두 분이 아직 남아있네요. 이 번에 소개할 분은 남 계장인데요. 직급이 우리 팀 서열 3위이지만 나이는 이 주임과 동갑내기랍니다. 이 주임 옆자리에 앉아서 그런지 두 사람은 자주 옥상 휴게실로 담배 회동을 합니다. 요즘은 흡연을 잘 안하는 손 주임까지 합세해서 역적모의를 하는 것 같아요. 

 남 계장은 임 계장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데, 임 계장과는 성격이 완전 딴판이랍니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일에 대해선 원칙주의자이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에요. 맡은 일은 철저하게 해 내지만 부당하게 자신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못 참아 하며 수시로 불만을 제기하고 투덜대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냥 넘어가도 될 사소한 문제에 매달려서 끙끙거린다는 거예요. 이럴 때마다 옆자리에 앉은 이 주임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척척 일을 해결해 주더군요. 그 때마다 나는 누구 직급이 더 높은 건지 헛갈릴 때가 많아요. 남 계장도 팀장에게 불만이 많은 편인데, 그 불만을 드러낼 때 보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대가 약해서 그런지 자신이 조직을 떠나고 말지 하는 극단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방법을 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 팀장은 남 계장의 성실함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임 계장과 비교해서는 임 계장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죠. 


 이제 우리 팀의 막내 아가씨를 소개할 차례네요. 남 계장과 가장 먼 자리에 위치한 막내 여직원은 바로 정 주임이에요. 1년차 신입 여직원인데 제 왼쪽 옆자리에 있어요.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에 당당하고 부당하게 양보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요. 얼굴이 반반하고 귀여운 데 못하는 말이 없어서 가끔씩 나를 놀래키기도 해요. 팀장이나 과장을 비롯해서 윗사람 앞에서도 말을 별루 가리지를 않네요. 매사에 철저한 듯 하나 때때로 허당끼를 보이기도 하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 처음에 나는 정 주임을 가까이할 마음이 없었답니다. 지금도 많이 친한 것은 아니지만 정 주임 특유의 허당끼가 재미있어서 나도 경계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중이랍니다. 정 주임은 특히 요즘 20대답게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특히 부동산에 과도한 관심과 욕심을 보이고 있죠. 그녀 앞 자리에 손 주임님과는 부녀지간(?) 같아서 그런지 잘 어울리는 편이고 손 주임님이 조목조목 업무를 잘 가르쳐주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네요. 다른 팀에서 정 주임을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있고 정 주임 자신도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이번 업무분장 사건에서 대부분의 불똥이 아버지뻘 손 주임님에게로 튀는 바람에 그 파도를 비껴가서 그런지 요즘은 잠잠해진 거 같아요.     

 자, 이렇게 우리 팀원 7명을 모두 소개했네요, 정말 개성들이 강하고 연령층도 다양하죠? 나도 처음에 이 팀에 들어왔을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잡동사니(?) 팀에서 내가 잘 버텨나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또 개성들이 다양한 만큼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고 재밌는 일들도 많더라구요 단지 저 리얼 꼰대만 잘 피해갈 수만 있다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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