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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코스모스(1)

 시초부터 종말까지 모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별, 인간, 식물, 우주의 먼지뿐만 아니라 벌레 등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의 피리 부는 사람의 곡에 맞추어 춤을 출 뿐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일곱 살 별이는 오늘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모니터에 빠져들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하루에 한 시간, 아침에 눈뜨자마자 거실로 달려와 BBC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는 것은 별이의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별이는 비디오를 보고 있는 내내 몸을 좌우로 규칙적으로 흔들고 있다.   불안하거나 짜증이 날 때도 몸을 흔들어 대는 습관이 있지만 그 때의 움직임은 불규칙적이고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디오를 볼 때처럼 아주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일 때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매일 보는 비디오라 그 내용을 전부 외우고 있었지만 볼 때마다 늘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음을 규칙적인 몸동작으로 알 수 있다.  

"우리 별이...오늘 아침에도 공부하고 있구나?"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아빠가 목에 수건을 걸친 채로 별이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려고 한다. 

"저리가! 싫어 싫어!"

세모꼴의 코에 찐빵처럼 도톰한 볼을 가진 별이가 귀여워 아빠는 볼 때마다 뽀뽀를 하려 하지만 별이는 스킨십을 아주 싫어한다. 

"별이 고만 귀찮게 하고 어서 와서 식사하고 출근하세요."

식탁에 아침상을 차리고 있던 엄마가 핀잔하듯 아빠를 불렀다. 

"어...잠깐만."

아빠는 스킨십을 포기하고 별이를 엉덩이로 살짝 밀어내고 옆에 털썩 앉더니 무릎을 두 팔로 감싼 채 별이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같이 응시했다. 모니터에는 다큐멘터리 9회 차 ‘별들의 삶’이 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한 달마다 정기 간행물을 펴내는 과학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별이가 어려서부터 우주에 대해 상당한 집착과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고 어렵사리 이 비디오를 구해 아들에게 선물했다. 

 지금부터 7년 전, 그러니까 1980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총13부작으로, 저 유명한 칼 세이건 교수의 ‘코스모스’ 라는 책에 힘입어 당시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다. 실제로 칼 세이건이 직접 출연하여 천문학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아름다운 우주의 영상이 곁들여져 감동을 준다.  

 아빠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모니터에 빠져 있는 별이를 빙그레 바라보다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세이건 교수가 붉게 빛나는 적색거성의 그래픽 앞에서 생명의 기원과 별의 기원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별이가 신이 난 듯 소리쳤다.

"핵융합, 핵융합!! 별은 핵융합으로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

놀랍게도 별이는 이제 일곱 살 어린아이였지만 별의 생성원리라든가 수소로부터 시작해서 핵융합을 통해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는 원리, 그리고 그 무거운 원소들이 결국 생명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티브이 속에서 칼 세이건 교수의 설명은 계속되고 있었다. 별이의 좌우로 흔드는 몸동작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는 다시 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별이야 저 아저씨가 말하는 거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할 수 있어?"

별이는 아빠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역시 우리 아들! 별이가 참 똑똑하구나!" 

아빠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일어섰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식탁으로 와 막 앉았을 때 별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별이도 별에서부터 온 거야."    

별이가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아빠와 엄마가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평소 별이는 이야기할 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표정으로 좋고 싫음을 표현하지 않고 웃도록 유도해도 웃지 않거나 자세나 몸짓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리지 못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에게 큰 관심이 없어 같이 놀려하지 않으며 혼자서만 놀았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라서 그러려니 하며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별이 양치질을 시키다가 일이 터졌다. 평소에 별이는 양치질을 먼저 하고 세수를 했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세수를 먼저 시키고 양치질을 시킨 것이다. 별이가 알고 있었던 정해진 순서를 깨뜨린 것이다. 보통 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상황이었지만 별이는 그러지 않았다. 세면기를 두드려 대고 소리를 지르며 한참동안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엄마와 아빠는 별이가 보통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며칠 후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름도 생소한 병명을 듣고 별이의 부모는 크게 낙심했지만 일반 자폐증과는 달리 지적능력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정상인처럼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에 조금 안심했다. 담당의사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정신질환의 일종이라 했고 공감 능력의 결여, 교우관계 구축능력 결여 등의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장애는 완치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었고 훈련과 습관으로 부족한 공감능력을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이 장애의 특징은 흥미를 끄는 특정한 대상에 강하게 몰두하는 점이었다. 아빠는 별이가 우주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흥미를 느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 아들을 위해 우주를 주제로 하는 BBC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구해 주었던 것이다. 다행히 별이는 이 다큐를 너무 좋아하여 하루 일과를 비디오 시청으로 시작할 정도였다. 


 비록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별이에게는 아빠와 엄마를 놀라게 한 범상치 않은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우주에 관한 넓은 지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아스퍼거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흔히 측두엽과 후두엽의 비정상적인 발달로 인해 감각이 남들에 비해 몇 배는 예민하여 남들이 잡아내지 못하는 걸 잡아내는 경우가 있다. 별이에게는 이런 예민한 감각이 특별한 주기를 감지하는 능력으로 발달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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