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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코스모스(3)


 아빠의 고향은 전라도 무주의 별내리 라는 작은 마을이다. 아빠는 고향에 내려와 감 농사를 짓기로 했다.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농사짓던 감나무 밭에 더해 그동안 서울에서 살며 한푼 두푼 모아 둔 통장을 정리하여 주변의 땅을 좀 더 매입하여 감 농사 규모를 키웠다. 가족이 무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들 가족의 귀농에 실망스러워했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성실하게 일하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아들 내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차근차근 농사일을 가르쳐 주셨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귀여운 손주를 매일 볼 수 있는 것을 행복해 하셨다. 또한 별이가 보통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가까이 두고 지내는 것을 다행스러워 하셨다. 별이는 서울에서 가져온 망원경을 할아버지께 자랑하며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고 원두막으로 나가 별들을 관측하며 여러 가지 별자리들을 할아버지께 알려 주기도 했다. 별이에게 시골 생활은 밤하늘을 보는 일 이외에도 재밌는 일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여러 가지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소가 한 마리 있었고 개와 닭도 있었다. 특히 별이는 감자라는 이름의 흰 개를 좋아했다.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는 별이었지만 감자와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마당에 내려온 별이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하는 감자는 할아버지와 별이가 원두막으로 나갈 때마다 따라왔다. 별이는 감자와는 눈 맞추기도 잘 했고 조금 느리긴 하지만 같이 달리기도 할 수 있었다. 별이네 가족의 시골생활이 정착되어 갈 무렵, 어느덧 별이도 학교에 가야할 때가 되었다.  

 무주의 별내리 마을에는 정식 초등학교 대신 분교가 하나 있었다. 학생들이라고 해야 모두 합쳐 열 명 남짓한 작은 분교였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나이도 제각각 이어서 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고 별이 보다 두어 살 많은 형아들, 6학년 형이랑 누나도 있었다. 

 별이가 처음 학교에 간 날, 분교에서 유일한 선생님이자 전 과목을 다 가르쳐 주시는 여 선생님이 별이를 전교생(전교생이라야 10여명 밖에 안 되었지만)에게 소개했고 아이들은 저마다 호기심을 드러내며 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런 관심이 낯설고 싫어서 별이는 아빠 손을 꼭 잡은 채로 아빠 허리에 머리를 묻고 아이들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서울아이구나. 난 순이라고 해."

까무잡잡한 피부에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제일 처음으로 한 발짝 다가와 별이를 보며 야무지게 인사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아이였다. 별이에게 우호적인 호감을 갖고 있음이 인사하는 얼굴표정에 잘 드러나고 있었다. 

"별이야 친구가 인사하네. 별이도 인사해야지~"

아빠는 별이를 돌려 세워 순이에게 인사시키려 했지만 별이는 아빠의 양 옆구리를 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고 아빠 허리에 박은 머리를 더 깊이 박을 뿐이었다. 

"부끄럼쟁이가 왔대이~ 얼굴은 밀가루처럼 하얀디. 꼭 가시나 같네." 

때 낀 얼굴에 코에는 닦다만 콧물이 얼룩진,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사내 녀석이 두 번째로 다가왔다. 얼룩지고 꼬질꼬질한 런닝구를 허름하게 걸치고 까만 고무줄 반바지를 입은 그 녀석은 한 발짝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별이를 요리저리 관찰해가며 말했다. 별이나 순이 보다 두서너 살은 많아 보였고 키도 더 컸다. 

"둘짱아. 처음 보는 친구한테 그러면 못써."

선생님이 이죽거리는 둘짱이를 나무랐다. 둘짱이는 짧게 깎은 머리를 한손으로 슥슥 문지르고 선생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가장 먼저 인사했던 순이도 둘짱이에게 눈을 흘겼다. 나머지 아이들도 돌아가며 별이에게 인사를 했지만 별이는 끝내 아빠에게서 돌아서지 못했다. 별이 또래의 아이는 처음 인사했던 순이 뿐이었다. 둘짱이는 별이보다 세 살이나 형아였고 둘짱이 또래의 아이로 몸집이 큰 치국이가 있었다. 치국이는 덩치에 비해 순해 보였고 말투도 약간 어눌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별이 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았다. 내년에 졸업을 앞둔 6학년 형아 한 명과 누나 한 명은 제법 의젓해서 나머지 아이들과 동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동네 골목대장 노릇은 둘짱이가 도맡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시골 분교 첫 상견례에서 동네 아이들은 아빠의 허리춤에 머리를 묻고만 있는 새로 온 서울아이를 처음 대면했고 자기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상견례 이후 아빠와 엄마는 매일 등교를 해야 하는 별이가 걱정되었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아침마다 감자가 동행하여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별이 부모님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반가운 일이 생겼다. 처음 등교하는 날 아침, 별이를 배웅하며 학교까지 동행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즈음, 건너 건너 옆집에 사는 순이가 나타났다. 순이는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쪼르르 달려와 별이 아빠와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별이와 학교에 같이 갈라고 이리 왔어요."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말하는 순이의 모습이 그렇게 대견하고 듬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결 안심이 되어 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아침마다 나란히 걸어가는 별이와 순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가는 감자는 주책없이 신이 났고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하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다가 별이가 하교할 때 쯤에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 별이가 집에 오는 길에 동행했다. 순이도 동무가 되어주었다. 등하굣길에서 순이는 마치 별이의 누이처럼 별이를 보살펴 주었다. 순이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특히 그런 감수성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별이와는 대조적이었다.  

 별이네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10분 정도가 걸리고 마을회관에서 다시 산쪽으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자그마한 공터가 있는 학교가 나온다. 공터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부족하지도 않았다. 공터 둘레와 학교건물을 빙 둘러 벚나무가 울타리처럼 둘러 자라고  있었고 학교의 정문까지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길에도 줄을 맞춰 양쪽으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하여 학교는 꽃으로 둘러싸였고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별이와 순이가 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쯤 저쪽에서 둘짱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책보를 한쪽 어깨에서 다른 쪽으로 가로질러 들쳐 멘 채로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화가 난 듯이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느그들은 어찌 같이 오냐?"

처음부터 별이가 맘에 들지 않았던 둘짱이는 순이가 별이와 같이 등교하는 게 영 못마땅했다. 별이에게 험상궂은 얼굴을 보였지만 서슬퍼런 순이의 얼굴에 대놓고 별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감자도 으르렁대며 둘짱이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둘짱이는 별이와 순이 주위를 알짱거리며 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별이는 순이 곁에 더욱 붙어서 걸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두 개의 교실 중 햇님 반이라는 팻말이 붙은 교실로 들어섰다. 학교는 1~3학년 저학년 아이들 반인 햇님 반과 4~6학년 고학년 아이들 반인 달님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분반이 되어 진행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수업은 한 교실에서 같이 진행되었다. 오늘 첫 시간은 과학 시간이었다. 

 아직 학교 갈 나이가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6학년 형아와 누나까지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두 등교하여 교실은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웠다. 별이는 몸을 좌우로 불규칙하게 흔들어대며 불안해했지만 옆자리에 앉은 순이가 누나처럼 별이를 다독이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교실은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손에 지구본 하나를 들고 오셨다. 선생님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설명해 주시고 곧이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들을 칠판에 그리며 우리 태양계를 설명해 주셨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산만하여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고 6학년 형아랑 누나는 수업내용이 싱거웠다. 선생님은 수업수준을 어디에 맞추어야할지 참 난감할 것 같았다. 칠판에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9개의 행성들을 모두 그린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자 얘들아~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름을 누가 말해 볼까?"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국이가 말해볼래?"

"수성, 금성, 지구,...."  

덩치가 큰 치국이가 부끄러운 듯 일어나 지구까지 말하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엔 누가 말해볼까...둘짱이가 말해 볼까~"

둘짱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한 듯 옆에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대뜸 소리쳤다. 

"달예~"

6학년 형아와 누나가 둘짱이의 대답에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었다. 둘짱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때였다. 별이가 자리에 앉은 채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오 별이가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두 알고 있구나!"

선생님이 감탄하며 칭찬해주자 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좀 더 높이고 몸을 좌우로 규칙적으로 흔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꼬마 교수처럼 보였다. 우주에서 운행하는 천체들의 주기에 특별한 감각을 갖고 있는 별이가 행성들의 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의 공전주기는 88일, 금성은 225일, 지구는 1년, 화성은 1.9년 목성은 11.9년..."

별이는 태양계의 전 행성들의 공전주기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선생님은 별이가 말하는 행성들의 공전주기를 들으며 책에 나와 있는 수치와 비교해 보다가 말문이 막혔다. 별이의 설명은 이제 행성을 도는 위성들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지구의 위성은 달, 화성의 위성은 2개, 목성은 95개..."

행성들에 딸린 위성들의 공전주기까지 말할 기세였다. 그 때 선생님이 끼어들며 말했다. 

"별이가 박사님처럼 우주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구나... 앞으로 과학시간에는 별이가 선생님을 도와주면 좋겠다. 얘들아 우리 모두 별이에게 박수~!!"

아이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박수를 쳐댔다. 별이는 계속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아이들의 박수를 받은 것이 기분 좋았다. 순이는 똑똑한 별이가 멋있어 보였다. 둘짱이는 입이 쭉 나온 채로 책상다리를 발로 툭툭 차며 불만스러워했다. 

"치! 그깟 거." 

둘짱이의 투덜대는 소리는 아이들의 박수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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