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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코스모스(2)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하고 돌아 온 아빠는 늘 그렇듯이 별이 방에 먼저 들러 볼을 비비려 달려들었다. 

"저리가! 싫어 싫어!"

스킨십을 답답해하는 별이가 아빠를 피해 구석으로 달아났고 아빠는 포기한 듯이 살짝 토라져 방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아빠는 두 팔을 머리 뒤로 받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방 천장은 항상 수많은 별자리들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저쪽 벽면에는 천장과 맞닿은 곳에 태양계가 자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주를 좋아하는 별이를 위해 엄마와 아빠가 방 전체를 별들과 은하들로 꾸며주었다. 아빠는 고개를 돌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별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 주었다. 아빠를 좋아하는 별이지만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려운 별이가 주머니에서 볼펜처럼 생긴 작은 손전등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천장에서 빛나는 별자리들 사이를 비추었다. 그러더니 무심코 말했다. 

"아빠! 요기쯤에서 최초로 전파 펄사가 발견되었어."

별이가 비추고 있는 손전등 불빛은 천장의 은은한 별자리들 사이에서 밝게 빛났다.  

"응?...펄사? 그런데 별이야... 펄사가 뭐지?" 

과학 잡지 기자인 아빠도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가 별이에게서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그런 걸 얘기할 때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서 마치꼬마 교수처럼 보였다. 

"펄사는 중성자별이 내는 빛이야."

아빠도 중성자별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신나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별이를 보며 짐짓 모른 체 하며 물었다.

"그럼 중성자별은 뭐야?"

별이는 몸을 규칙적으로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신이 나서 설명했다. 

"중성자별은 초신성 폭발 후 남겨진 별의 핵이 쪼그라들어 원자핵과 전자가 합쳐져 중성자로 변하면서 만들어진 별이야. 블랙홀로 가기 전 단계야."

아빠는 중성자별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별이 만큼 자세히 알진 못했다. 중성자별은 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어 자전속도가 빨라지고 중성자에서 방출하는 빔이 지구를 향할 때만 펄사의 복사활동을 관측할 수 있다. 이러한 펄사의 활동을 등대효과라고 부르며 마치 맥박이 뛰듯 주기적으로 빛을 내어 펄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아빠는 별이에게 또 물었다.

"최초의 전파펄사가 발견된 곳이 바로 그곳이구나? 그럼 그 펄사 이름이 뭘까?"

"CP 1919." 

별이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 펄사의 맥동주기는 1.337초야."

그리고 별이가 손전등을 점멸했다. 마치 펄사 CP1919에서 맥동하는 별빛을 보내듯이. 별이가 깜박거리는 손전등의 주기가 아빠에게는 1초보단 다소 길게 느껴졌고 2초보다는 짧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아빠가 느낄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실제로 별이의 손전등 점멸주기는 놀랍게도 정확하게 1.337초였다!! CP 1919의 실제 맥동주기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올해 1987년은 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의미가 있는 해이다. 75~76년의 주기를 가진 핼리혜성이 지구를 다시 찾아오는 해였기 때문이다. 별이는 올해 핼리혜성을 직접 관측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아빠는 핼리혜성에 대한 특집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 찾아 온 핼리혜성은 4월 11일에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다가 멀어져 태양계의 끝쪽으로 모습을 감추게 되고 오는 2061년 8월에 가서야 지구에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안타깝게도 핼리혜성의 이번 방문은 지난 1910년의 방문 때보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밝기도 떨어지고 꼬리도 짧아 기대했던 만큼의 장관을 보여주진 못할 것이다. 아빠는 핼리혜성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역사와 특징, 크기, 주기 등에 대한 기사자료를 차근차근 준비하였지만 독자들이 가장 관심가질 내용은 역시 관측하기 좋은 장소와 시기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아빠는 천문관측기관에 연락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반구에서 관측 가능한 혜성의 고도는 낮기 때문에 관측조건이 좋지 않은데다 올해의 핼리혜성은 거리도 멀어 밝기도 떨어진다고 했다. 아빠는 기사내용 중 가장 중요한 관측시기에 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4월 10일을 기준으로 하여 새벽 2~3시경에 정남쪽 하늘에서 4등급의 밝기로 고도 7~8도 높이에서 볼 수 있다. 고도 7~8도 높이는 야트막한 구릉이라도 시야를 가리면 볼 수 없고 날씨가 좋더라도 망원경 관측이 어려울 수 있다. 오는 20일이 지나면 핼리혜성의 고도가 25도 정도로 높아지지만 이때는 음력 보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달빛이 밝아 관측이 어렵다.』

 내용을 정리하고 보니 독자들이 기대할 만한 기사 내용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낙심한 아빠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별이에게 물었다.      

"별이야...이번 핼리 혜성을 제일 잘 보려면 언제가 좋을까?"

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24일 밤 9시 10분부터 10시 14분까지 월식이 진행되구... 월식이 진행되면 5등급의 혜성 머리 부분과 10~15도에 이르는 꼬리를 볼 수 있어. 그리구 5월 초가 되면 그믐이 다가와. 하늘이 어두워져서 핼리혜성을 잘 볼 수 있을 거야."

놀라운 일이었다. 별이가 아빠처럼 천문 관측기관에 문의를 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아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들을 신문에서 봤을 리도 없었다. 별이는 중성자별 펄스의 점멸주기와 같이 비교적 짧은 주기를 세밀하게 감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몇 십 년 주기로 찾아오는 혜성과 같은 천체의 장거리 주기도 시시각각 감지하여 최적의 밝기와 고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빠는 별이가 언급한 월식기간을 관측기관에 문의하여 별이가 말한 날짜와 시간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사를 추가하여 정리했다. 결과적으로 아빠는 별이의 도움으로 좀 더 내실 있는 특집기사를 실을 수 있었다.       

 몇 개월이 흘러 어느덧 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별이가 아스퍼거 증후군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고민이 많았다. 번잡하고 바쁜 도시에서 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다니는 과학 잡지사의 경영사정도 좋지 않았다. 활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 시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출판사나 잡지사 들은 구조조정의 기로에 서 있었고 아빠가 다니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는 오랜 고민 끝에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별이를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번잡하고 여유 없는 도시생활에서 겪게 될 별이의 스트레스 등에 대한 고민도 이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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