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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코스모스(4)

 아이들은 처음 만났을 때 별이의 행동이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생각도 옅어지고 별이의 행동에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별이가 가져온 신기한 망원경 이야기를 듣고 별이와 친해지고 싶어 했으며 그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구경해 보고 싶어 했다. 별이는 날씨가 맑은 날 밤에 할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망원경을 들고나가 아이들에게 별구경을 시켜주고 별자리 설명을 해주면서 아이들과 어울렸다. 아이들 중 별이의 망원경을 구경하지 못한 아이는 둘짱이가 유일했다. 둘짱이는 아이들이 별이를 좋아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특히 순이가 별이와 단짝이 되어버린 것이 분했다. 망원경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것이 별이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둘짱이는 별이를 골탕 먹일 기회만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시간이었다. 햇님 반에 모인 아이들이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무럭무럭 피어나는 저녁 연기~

아이들은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종달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발로 책상을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노래가 멈추었고 아이들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별이가 귀를 막고 몸을 흔들어대며 책상을 차대고 있었다. 

"별이야 무슨 일이니?"

선생님이 걱정이 돼서 별이 자리까지 다가와 물었다. 

"아냐 아냐!" 

별이는 이 소리만 되풀이하며 몸을 흔들어댔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영문을 모른 체 별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별이야 왜 그래? 노래 부르기 싫어?"

순이가 안타까운 마음을 얼굴에 가득 담아 별이에게 물었다.

"아니 아니! 풍금 소리 때문에...풍금 소리..."

노래 4마디가 끝날 때마다 미세하게 조금씩 늦춰지는 풍금반주가 별이의 불안감을 키웠던 것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둘짱이가 다가와 윽박지르듯 한마디를 뱉었다. 

"아고야~ 니는 밖으로 나가래이~ 나가서 니 혼자 실컷 독창이나 하래이~" 

순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둘짱이에게 소리쳤다. 

"그런 말이 어딨어! 별이가 저러는 건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야." 

"그래 순이 말이 맞단다. 둘짱이는 어서 자리로 돌아가거라.  별이야 선생님이 조금 빠르게 다시 반주 해볼게."

선생님은 주의를 집중하며 다시 반주를 시작했고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별이의 예민한 감각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별이는 귀를 막고 몸을 불규칙하게 흔들 뿐이었다. 순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별이를 보며 별이의 마음이 좋아지길 기도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둘짱이는 약점이라도 잡은 듯 별이를 곁눈질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골생활에 잘 적응해가던 별이가 음악시간에 있었던 박자사건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생겨났다. 특히 둘짱이를 만나면 겁을 냈다. 아이들도 별이의 별난 예민함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순이는 별이에게 변함없는 호의와 우정을 베풀었다. 순이는 별이가 아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때는 6월 초. 무주의 별내리에는 반딧불이가 한창인 시절이다. 순이는 별이를 반딧불이 동산에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뒤로 조금 더 올라가면 마을 사람들이 반딧불이 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장소가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의 산마루 지역이었는데 비교적 평평한 대지가 꽤나 넓었고 야생화와 싱그런 풀들이 대지를 덮고 있어서 초원 같았다. 동산의 한 가운데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고 그 밑에는 평상이 오래전부터 놓여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오다가다 앉아서 쉬곤 했다. 평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포근한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올려다보면 드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반딧불이가 떼를 지어 나타나는 6월 초가 되면 아이들은 어스레해 가는 저녁 무렵에 반딧불이 동산에 올라와 반딧불이 불빛을 쫓으며 늦게까지 놀곤 했다. 순이는 별이를 데리고 반딧불이 동산에 올라 아이들과 어울릴 생각을 했다. 별이가 가지고 있는 망원경도 가지고 가서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관측하면 아이들이 더 즐거워할 것 같았다. 

 순이는 별이와 함께 반딧불이 동산에 올랐다. 마당에 엎드려있던 감자도 신이 나서 따라왔다. 여러 아이들이 이미 동산에 와서 뛰어놀고 있었다. 순이와 별이가 망원경을 들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 뛰어 놀던 아이들이 하나씩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느티나무 평상까지 오른 별이와 순이 주위로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덩치 큰 치국이도 있었고 6학년 형아랑 누나도 있었다. 별이 보다 어린 두어 명을 빼면 학교에 다니는 마을 아이들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한 명만이 저쪽에서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짱이였다. 둘짱이는 주저하며 평상 쪽으로 오지 못했다. 별이가 능숙한 솜씨로 평상위에 삼각대를 놓고 망원경을 설치했다. 망원경 렌즈가 밤하늘을 향해 세워지자 아이들이 와 하고 소리 지르며 좋아했다. 

 어스레하던 저녁은 곧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동산에는 반딧불이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달빛도 없어서 밤하늘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는 별빛이 선명했다. 

 망원경 설치 채비를 마친 별이가 둘짱이 쪽을 향해 걸어갔다. 순이는 영문을 모른 채 따라갔다. 고개를 외면하고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둘짱이에게 별이가 말했다.  

"오늘은 달빛이 없어 은하수를 보기에 좋은 날씨야. 둘짱이 형 가자~"

둘짱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하다가 별이를 따라 걸었다. 망원경이 있는 평상까지 온 별이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초점을 조절하고 난 후 둘짱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번 둘러보고 둘짱이가 망원경 대안렌즈에 눈을 갖다 댔다. 밤 하늘의 천구에 투영된 우리 은하의 단면이 마치 은빛 강처럼 펼쳐졌다.  

"워메~ 멋지구마잉~"

둘짱이의 감탄에 아이들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한참을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둘짱이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고 별이와 순이 옆에 수줍은 듯 섰다. 둘짱이에 이어 아이들은 차례차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감상헀다. 이윽고 모든 아이들이 다 돌아가며 은하수를 감상했을 때 밤은 더 깊어졌다. 달빛이 없는 밤하늘에 은하수는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더욱 선명해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반딧불이 떼가 지천으로 날며 밤하늘의 별을 보태기 시작했다. 반딧불이 불빛을 쫓아 한참을 뛰어다니다 지친 아이들이 평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았다. 무주 별내리의 반딧불이 동산은 쏟아질 둣한 별들과 어지러히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이 평상에 모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별이가 갑자기 평상으로 올라가 일어서더니 바지주머니에서 볼펜같이 생긴 손전등을 꺼내어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전등을 껐다 켰다하며 점멸시켰다. 아이들은 몰랐지만 그 점멸주기는 1.337초였다. 여기저기 무작위로 날아다니던 수 많은 반딧불이로 인해 어지러히 점멸하던 반딧불이 꽁지빛이 별이의 손전등 불빛에 맞추어 하나둘씩 공조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공조하며 점멸하는 반딧불이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전체 반딧불이들이 일제히 같은 주기로, CP1919 펄사의 맥동주기로 꽁지불빛을 점멸시켰다. 이 모습은 밤하늘에 떠있는 은하수를 더욱 크게 확장시켜 마치 은하수가 밤하늘 전체를 뒤덮은 둣 보이게 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이 아름다운 장관에 순이가 먼저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둘짱이도 슬그머니 박수를 치며 별이를 경외하듯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별이는 처음으로 순이가 웃는 얼굴 모습을 보며 순이의 얼굴 표정을 따라 웃었다. 웃는 것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얼굴 표정임을 깨달았다. 밤하늘의 별들과 은하수와 반딧불이와 아이들이 하나로 공조하며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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