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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해바라기는 어디에? 옆방에..

Lesson 1. 상설 전시가 무료입장이라도 기획 전시를 확인하자

by 일월 Feb 09. 2025



보통 서유럽 여행은 성당, 박물관, 미술관이 8할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도 못지않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방곡곡 누렸다. 서울에서도 종종 전시를 가며 느끼는 건 전시도 결국 공간이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텅 빈 공간에 벽에만 작품이 있고 (종종 중앙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그 속은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번 여행으로 느낀 건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이 취향이라는 점. 일반적으로도 루브르 박물관보다 오르셰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도 조각품이나 사물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 그렇게 자연사 박물관을 얕봤다가 후회했지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여행 중 첫 박물관이라 별 감흥 없었음에도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자연사 박물관 마감 1시간 전쯤 가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후다닥 보고 나온 게 무척 아쉽다. 공룡 좋아하지도 않는데, 나이 먹고(?) 공룡, 우주와 관련된 것들을 보니 새삼 느껴지는 게 또 다르더라. 단순히 실체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의 것을 생각하게 된달까(이때 느낀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괴롭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2주 동안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대영 박물관, 테이트 모던,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스코틀랜드 현대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르셰 미술관 총 9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갔다. 역시 이중 고흐의 비중은 상당하다. 생각지 않았던 곳에도 몇 작품은 꼭 있었으니. 마침 한국에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공연 중이라 여행 가기 전에 급하게 관람했다. 서유럽에 가면 필히 고흐 작품을 보게 될 것이므로. 확실히 고흐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 바라보니 더 와닿는다.



특히,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에서 만난 고흐 작품 <올리브 나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강렬한 색감과 질감, 곡선이 누가 봐도 "나 고흐가 그렸어요"하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마침 이 작품 머그컵이 있길래 고민하다가 샀다. 그 후, 파리에서 다른 고흐의 머그컵들을 보니 조금 더 비싼 편이었어서 역시 사길 잘했다는 생각도 덤으로. 아, 그리고 아래 사진처럼 전혀 다른 느낌의 고흐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니 고흐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올리브 나무>



당연히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해바라기> 이다. 또 고흐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해바라기> ,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 오르셰 미술관에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의 방>, <자화상>이 대표적인 작품인데.. 여기서 아주 슬픈 사연이 등장한다.



유럽은 가깝다 보니 서로 작품을 빌려주는 방식이 흔한 듯 보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작품들을 바꾸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는 그걸 알 리가 없었고, 알았더라도 “오 그렇구나”하고 넘겼을 것이다. 또, 기본적인 여행 경비로 이미 돈이 많이 나간 탓에 무료로 입장하는 곳이 무척 반가웠다. 특히 영국은 웬만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라 굳이 유료로 갈 생각을 하지 않기도 했다(한인 민박 사장님이 코톨드 미술관을 알려주셨는데, 런던에서 몇 안 되는 유료 미술관이라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고 한다. 시간 남으면 가볼까 했는데 여의치 않아 외관과 숍만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통 상설 전시가 무료고, 기획 전시가 유료인 건 알고 있었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기획 전시를 하겠어? 어차피 상설에 볼 게 다 있겠지.", "상설 전시만 보기도 바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여행을 떠난 기간에 "내셔널 갤러리 200주년 반 고흐 특별전 Van Gogh: Poets and Lovers"를 하고 있었다. 우린 11시 45분 상설 전시 예약을 하고 입장했는데, 옆쪽에서 판매가 마감됐다는 표지판을 발견한다. 우리가 일찍 왔더라면 현장 구매도 있었으려나 진짜 매우 엄청 무척 아쉬웠다.. 그리고 원래 내셔널 갤러리의 대표 작품 <해바라기>는 저 옆 방에…. 한국으로 돌아와 한참 후에 찾아보니 이 기획전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해바라기>와 함께 걸린 모습을 최초로 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에 적힌 모습 그대로 전시한 거라고 한다. 문득 이 숏츠가 떠오른다. 약 130여 년이나 흐른 후에 자신이 원했던 대로 전시된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감동적일지.



전시를 보다가 앉아서 쉬던 중 빼꼼 보이는 기획 전시 방...과 오르셰 표지판



기획 전시, 뭐 있어? 뭐 있더라.. 위에서 말한 오르셰 대표작 몇 개도 여기에 와 있더라…. 그래도 오르셰에서 고흐의 <자화상>은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 중 단연 기억에 남는 그림이다. 색감 때문인지 그림에서 정말 빛이 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 자화상 앞에 유독 몰려있는 사람들과 유일하게 서 있던 보안원까지. 뒤에서 사람들을 보며 괜히 뭉클한 느낌도 든다.



<자화상>과 깨알같이 보이는 <지누부인>



사실 난 원래 고흐에게 관심도 없었고, 이전에 고흐 뮤지컬을 할 때도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잘 모르니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역시 오랫동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느낀다. 또, 이렇게 전 세계적인 고흐의 인기를 체감하고, 돌아와서 뮤지컬을 다시 보니 배로 슬픈 건 기분 탓일 거라고 여기지만 기분 탓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어쩔 수 없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라고 다짐하며 상설 전시가 무료입장이라도 기획 전시는 뭘 하고 있는지 꼭 확인하자는 교훈을 얻는다. 추가로 기획 전시가 아니더라도 여행 가는 시기에 해당 작품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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