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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7. 2024

요정이 씁니다. 수연이에게

동네에 친한 동생이 있습니다. 

딸이 있는데, 좀 어려요. 나이가 아니라 또래보다 어리다는 말 입니다. 편의상 '수연'이라 부를게요.


초등학교 1학년이고 아직 한글을 잘 못한대요.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어 등교에 애를 먹더라고요. 8시 30분에는 나가야 하지만 수연이는 최-대한 늑장을 부리죠. 30분, 30분, 그놈의 30분 때문에 모녀가 30분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입니다.


수연이엄마의 하소연을 듣자니 뭔가 도움을 줄 순 없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수연이에게 엽서를 써봤는데, 답장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천천히라도 직접 읽어보길 바랐죠.


8살이면, 아직 통한다.


저는 수연이를 만나면 항상 수연이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와! 수연이는 인사를 너무 잘한다! 최고다!"

"수연아 머리띠가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최고야!"

이렇게요. 사실이니까요.ㅎ


편지나 쪽지를 쓸 땐 평상시 깔아 뒀던 밑밥을 건져 올려 활용하면 좋습니다. 위 쪽지에선 적극 활용하진 않았지만요. 습관처럼 건네던 별명이나, 평소에는 놀림감으로 쓰던 말 역시 글로 풀어내면 반전감동을 줄 수 있어요. 간단: 너 돼지가 얼마나 귀여운 캐릭터인지 알아? 


그리고 말을 잘 들어서 스티커와 my쮸 선물을 받았음


어른인 우리가 보기에 대단히 상식적인 것들도, 아이들에게는 아닌 경우가 많죠.

그 아이의 나이로 돌아가서 같은 수준으로 현실을 바라본다면 이해하기에 조금은 편합니다.

보통은 옛날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완벽하게 공감할 수는 없고요, 한 60%는 '그럴 수도 있겠다-' 했다면, 나머지 40%에 대해서만 잘 풀어 일러주면 되는 겁니다. 


교과서가 어렵고, 친구들이 놀리면 당연히 학교 가기 싫어요. 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싫어도 가야한다, 모르니까 가서 배워야지 하는 논리가 통할까요? 

정말 가기 싫겠구나(60%의 공감)

하지만 안갈 수는 없으니(20%의 단호함)

잘 참고 다녀오면(10%의 조건)

학교가 좋아지도록 엄마가 도와줄게(10%의 긍정적 메세지나 보상) 

이런 식으로 상황에 따라 비율을 조절해요.



아무튼 수연이는 한동안 아침요정을 찾다가 집안 구석구석에서 잃어버렸던 장난감을 많이도 찾아냈다 합니다. 물론 등교도 30분에 잘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글을 잘 못하는 아침요정...


드디어 아침요정이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수연이 엄마가 한글 걱정을 하기 시작해서요.


거꾸로 놓고 쓰느라 재미 좀 봤어요. 


수연이가 아침요정에게 연필을 선물받았다.


다있다는 그곳에서 가끔 연필 한 세트를 삽니다.

저렇게 연필에 글을 적어 저희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곤 했어요. 장점을 가득 적어서 주죠. 내 마음도 섞어요. 잔소리는 새기지 마세요. 응원이랍시고 "넌 잘할 수 있어!" 이런 것도 쓰지 마요. 그 연필 안잡습니다. "받아쓰기 80점을 받다니" "대단한 철수군" "너의 화장법을 알려달라" "엄마보다 키 큼" "무조건 사랑해" 이런 거 좋네요.



수연이에게 받은 답장이 있는데, 저작권이 수연이에게 있으니 사진을 공개할 수가 없어요.

세상에 메달을 만들어서 쪽지를 썼지 뭐예요.

저를 사랑한다고요~

글씨가 아주 서예가 저리가라예요. 역시 최고다 수연이. 그 사이에 한글이 그렇게 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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