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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선물을 기다립니다.

by 청유 Mar 19. 2025

모두들 봄을 맞이하는 지금도 나는 겨울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날 것이지, 익숙함을 영끌해서라도 자리보전하려는 그가 밉다.

물론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박수를 쳐준 적은 없다. (첫눈의 해괴함엔 기염을 토했지만)

봄맞이 고객들이 화색을 하고 물개박수를 치는 건, 맹렬했던 그의 수고가 아니라 봄을 환영하기 때문이란 걸 알고나 가라고 뭇매를 줘본다. 알았으면 이제 좀 빨리 가.



마음대로 겨울의 성별을 남자(그)정한 건 경험적 이유 말곤 없다. 

나랑 안맞으니 남자겠지 뭐.

(기혼여성에게 남자란 무릇 배우자를 뜻할 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추위에 민감한 나는 수족냉증까지 앓아(?) 겨울이 유난히 가혹했다. 아니, 순서가 바뀌었나. 수족냉증 때문에 추위에 민감해 겨울이 힘겨웠다.(이름도 참 거시기하다. 손발추움은 안됩니까?) 이러나저러나 고된 계절이다. 하지만 나에겐 네 명의 자녀가 있고 제법 바쁘기에, 위험한 이불밖으로 매일같이 출타할 수밖에 없다. 겨울엔 겨울방학도 있었으니까. 여러가지로 녹록지 않다.



봄이 온 줄은 막내 등원길의 들꽃을 보고 알았다. 무미건조한 3월의 달력이 수학이라면, 들꽃은 수학익힘책이다. 아하? 이게 그거구나? 봄 맞지? 틀렸나? 하는 그 익힘책이 봄 언저리를 가르친다.



위 세 아이들은 유치원생이던 때, 봄날 놀이터 들꽃을 따다 내게 건내곤 했었다.

3월 중순부터는 더이상 집으로 직진할 수가 없는 계절이라, 중간중간 있는 놀이터를 참새방앗간처럼 들르곤 했던 것 같다. 진료대기는 폰질이라도 하지, 놀이터대기는 매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해서 적잖이 피곤하다. 주변 엄마들의 양 볼엔 "피", "곤"이 나란히 쓰여있다. 나도 지금 저렇게 생겼나?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려본다.




어디서건 참 때도 잘 맞추는 아이들이다. 정말 진짜로 잠-깐- 놔둔 물병을 때맞춰 발로 치고 지나가며, 진흙탕을 조심하라고 말하려는 바로 그 순간 진흙을 밟는다. 지나가려는데 왜 거기다 물병을 두는 것이며, 밟고 나서야 조심하라고 하는 것들이 아이들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후처리는 내 몫이니 내가 이긴다. 하지만 놀이터에서의 꽃다발 서프라이즈는 이길 재간이 없다. 들꽃다발이라니. 내 얼굴에 피곤이란 글자가 나타나면 때맞춰 다가오는 향긋한 풀들 앞에서 승패를 어찌 논하랴. 벌써 글자를 읽나? 천잰가.. 이게 보이나? 착한 사람의 눈을 가졌구나.. 그저 근할 뿐인 건 어미만의 마음일 것이다. 예쁘게 버무려진 선물은 잠시 과장된 기쁨 속에 있다가 며칠을 주머니 안에서 건조되어 가루가 되면 털린다.


들꽃은 봄이 왔다는 의미지만, 비단 계절의 바뀜만을 뜻하지 않는다. 겨우내 얼어서 묵직이 갇혔던 것들이 해방되는 자유로움이랄까.

글씨를 쓰는 사람에게 수족냉증이란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모른다. 언 손은 외부적인 온열장치가 없으면 스스로의 체온만으로 녹여지지 않는다. 두 겹의 양말로도 발이 시려 잠에서 깬 무수한 밤들은 추억이 아니라 트라우마다. 소매상에선 구하기 힘든 열선패드를 찾아 헤맸던 건, 움직일 수 없는 손에 해방을 주기 위해서였다. 펜이 닿은 손가락 마디가 아프거나 떨지 않길 바라서였다. 이러다 전기인간이 된다거나, 몸이 타버린다거나, 누진세걱정 같은 셀프 호들갑은 덤이다.




아직 내게 봄이 시작되진 않았다.

가을부터 초봄까지는 통상 겨울의 범주다.


어제는 들꽃을 처음 봤는데 오늘은 서너 군데나 지나쳐왔으니, 머지않아 방앗간을 개장할 놀이터에도 소복소복 들꽃들이 내려앉을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꽃을 선물 받는 의식은, 얼었던 손이 곧 저절로도 부드러워질 수 있을 거라는 현실적인 기대를 안긴다. 조막손에서 내 손으로 건너와 몸 곳곳으로 퍼질 향기를 기다려본다.

꽃이 온 건 봄으로부터지만, 아이들의 예쁜 마음을 중증 수족냉증의 손에 드는 순간에 나는 비로소 봄을 받는다.



, 

나의 봄은,

아이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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