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책을 봤습니다.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라 수많은 책 중에서도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죠. 서평을 찾아보니 ‘내 얘기 같아서 뜨끔했다. 작가가 독심술사인 줄 알았다’는 농담 섞인 진담이 더러 눈에 띄었어요. 책 앞부분에서는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줄줄이 열거합니다.
책 제목이든 영화 속 장면이든 현실 속에서든 이렇게 상대방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강렬한 애증관계가 부부 말고 또 있을까요?
영화 결혼이야기에서도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해당 장면은 애증으로 얽힌 부부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선지 감독은 약 10분간 이어지는 이 감정 신을 처음부터 끊지 않고 한 번에 원테이크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스칼릿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이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데 결혼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내 입장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영화 『결혼 이야기』
부모님의 오랜 갈등을 보다 못한 20대 딸이 상담을 신청해서 상담실에 온 50대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워낙 말이 없어서 답답해도 참고 살았는데 최근에 부인과 수술을 받으면서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주체가 안 된다고 하셨어요. 부인이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격앙된 어조로 쏟아내는 동안 남편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만 계셨죠. 상담 말미에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을 폭발하는 아내와 사는 게 지쳤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자기가 뭘 해도 부인이 다 못마땅해할 게 뻔하니까 더 이상 애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다음 회기 때 부부에게 각자 배우자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 남편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말없이 챙겨주는 모습이 듬직했답니다. "이렇게 안 맞는 성격인 줄 알았으면 당연히 결혼을 안 했겠죠."라는 말을 금세 덧붙였어요. 남편은 자신은 말주변이 없는데 아내가 말을 잘하고 밝아서 좋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위 부부의 사례처럼 아무리 갈등이 심한 부부라도 처음 결혼을 결심할 당시엔 상대방에게 끌렸던 점이 있습니다. 우린 종종 자신과 정반대 성향이거나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 같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결혼을 결심하죠. 배우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따뜻함, 경제력, 배려, 성실함 등 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바라는 갖가지 긍정적인 특징을 말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나와 어울리는 사람에게 잘 끌리지 않고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죠. 여기에는 양육자에게 있는 부정적인 특징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서 상대방을 통해 과거에 충족되지 못한 결핍과 상처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원했던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자기 내면에 남아 있는 감정을 지금이라도 해결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죠.
누구에게나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양육자로부터 보호와 양육,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면 성인이 돼서도 계속해서 이것을 원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성장 과정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억제되고 방해받은 것이 있다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는 이를 '미해결 과제'라고 부릅니다.
무의식은 처음에는 잘 맞는다고 느끼지만 결국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을 경험하여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야 할 상황을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상반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힘겨루기를 하고 싸우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상대방이 내 부모의 긍정적인 특징뿐 아니라 부정적인 특징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리고 결혼 생활 내내 그로 인해 얼마나 다투고 고통받게 될지 알 수 있다면 단숨에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훗날 결혼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상대방의 결점들을 최소화시키고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기 마련이죠.
마취와도 같은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결혼한 뒤, 마취는 금세 풀려버립니다. 나와 달라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상대방의 장점은 거의 필연적으로 단점이 되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안타깝게도 결혼 후 이런 정반대의 부분이 서로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을 받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죠. 대수롭잖게 여기고 축소시키고 싶었던 상대방의 부정적 기질들도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 KathrinPie 출처 pixabay
『허니문 이펙트』의 저자 브루스 립튼은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불타는 로맨스에 푹 빠졌던 커플이 어떻게 전쟁 같은 싸움을 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책에서 들고 있는 간단한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마침 남자는 고장 난 차 수리 또는 집세 등을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어서 반사적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하죠. 여자는 남자에게 ‘나한테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하냐’고 쏘아붙이고 남자는 여자의 비난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남자가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동안 여자는 ‘나를 사랑한다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합니다. 커플은 이제 부지불식간에 자라면서 부모님과 교육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고 갈등이나 좌절을 겪으면서 뭔가 잘못됐지만 되돌리긴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처를 하죠. 어떤 커플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강렬하게 싸웁니다. 또 다른 커플은 한쪽이 끊임없이 부정적 표현을 쏟아내고 다른 쪽은 입을 꾹 다물어 버린 채 상황을 회피합니다. 마치 추격자와 도망자처럼. 어떤 부부는 남편과 아내 둘 다 겉으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채 일이나 자녀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바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할 때 나타나는 나의 감정이나 행동 패턴은 어렸을 때 우리가 생존을 위해 취했던 방식이거나 고통에 반응했던 방식일 확률이 큽니다. 현재 결혼 관계에서는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를 다시 재현하는 것이죠. 정신분석에서는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반복강박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대가 한 말에 대해 반응하는데 이는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힘겨루기가 지속되면서 점점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게 되기도 하죠.
우리는 가깝지 않은 제삼자에게는 예의를 갖춰서 말하면서 자기 배우자에게는 비난이나 막말을 하고 함부로 대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해 각자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면 나란히 달리는 기차의 레일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어지죠. 부부는 상대방에게 상처되는 말을 쏟아내다가 어느 순간 대화를 포기하고 담쌓기를 해버립니다. 언젠가 TV에서 서로 말을 한마디도 안 하면서 꼭 필요한 얘기만 카카오톡으로 소통한다는 부부의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유령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갈등이 깊어지고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들어지기 전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성격 차이와 의사소통 능력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성격과 상관없이 학습을 통해 습득가능합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성격 탓을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배우고 훈련하면 됩니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방법을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습관을 들여봅시다.
1. 듣기 싫은 소리를 한 번 했다면 좋은 말을 최소한 다섯 번 이상 해주자.
부부치료 전문가인 가트맨과 그의 동료들이 약 2000쌍의 부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를 보면 행복한 부부들은 부정적인 상호작용과 부정적인 표현보다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긍정적인 표현을 평균 5배 정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이혼으로 가는 네 가지 독이자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인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를 자제하자.
주변에서 부부들이 갈등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술, 도박, 외도, 폭력, 시댁과 처가 문제, 가치관의 차이 등 다양합니다. 부부치료 전문가인 가트맨은 부부가 이혼하는 공통적인 이유가 바로 부정적인 싸움 방식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36년 동안 3,000쌍의 부부들의 모습을 촬영해서 100분의 1초 단위로 미세하게 분석했고 그 결과 가장 예후가 안 좋은 방식이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수작업을 하지 않은 채 이 네 가지 방식을 계속 사용할 경우 결국은 이혼을 하더라는 것이죠. 가트맨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부부들의 이혼 가능성을 약 95퍼센트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관계를 망치는 4가지 지름길인 비난, 방어, 경멸, 무반응(담쌓기)은 부부의 상호작용 방식 중 관계에 가장 위험요소가 되는 방식이며 이러한 행동들은 이혼의 예측인자로 나타납니다.
◆ 비난
상대방이 인격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불평은 어떤 행동을 문제 삼지만 비난은 상대방의 성격 전체를 문제로 삼음)
비난에서 많이 나타나는 표현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당신은 절대로 그런 것 못해/당신은 도대체 왜 일을 이따위로 해/당신이 항상 그렇지 뭐!/생각해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 불평과 비난의 차이
불평 : 난 당신이 저녁에 늦게 들어오면 전화하기로 약속했던 걸로 기억해. 밤에 계속 잠도 못 자고 기다렸어.
비난 : 당신은 왜 그렇게 연락도 없이 맨날 늦어? 도대체 나를 아내로 생각이나 하는 거야?
◆ 방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자신을 상대의 비난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태도. 방어 반응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갈등을 끝내지 못함
방어에서 많이 나타나는 표현
(당신도 그러잖아. 당신은 안 그랬어?/왜 나만 뭐라고 그래?/그러는 넌 뭘 잘했는데?/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 경멸
▶경멸은 관계를 망치는 가장 위험한 요인
▶상대가 열등하며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내포
▶경멸의 핵심은 상대보다 자신을 더 우월한 위치에 놓는 것
▶욕, 비아냥거림, 콧방귀 뀌기, 상대방을 비하하고 조롱하기
경멸을 사용하는 대화의 예시
“이걸 일이라고 한 거야?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정신줄은 어디다 놓은 거야 대체? 멍청하기는 정말.”
“어이구 기막히다 진짜, 이젠 글도 못 읽냐?”
비난 : ‘그건 당신 잘못이야,’ ‘당신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어’라고 하는 것임
경멸 : 경멸은 상대를 못난 사람, 어린 사람으로 취급하고 조롱하고 비웃음. 말투뿐 아니라 표정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함(표정, 억양, 말투, 자세, 행동 등)
◆ 담쌓기
▶긴장상태가 지속되면서 상대에 대한 반응을 중단하고 마치 돌담을 쌓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담쌓기는 감정의 홍수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의견 불일치를 해결할 가능성을 차단함
▶눈 마주치지 않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 잠그기, 상대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기, 각방 쓰기, 전화기 꺼놓기, 집 나가기
▶겉으로 싸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신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감정적인 단절이 일어나고 관계가 망가지게 됨
3. 부부 사이에 애착을 기반으로 하는 신뢰는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구축된다. 그러니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
중년 여성을 위한 마음 PT
당신은 배우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됐나요?
결혼 후 생각보다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기대와 달리 결혼생활을 하면서 실망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결혼 생활 중 서로 성격이 맞지 않거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워 가장 힘들었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구체적인 상황을 적어봅시다.
상황 1
상황 2
상황 3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웠던 상황을 견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나요?
관계를 망치는 4가지 지름길인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 중 당신과 배우자가 각각 많이 사용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