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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든쌤 Sep 30. 2024

도파민 자체는 죄가 없지만  

도파민 디톡스 중입니다

종종 중년의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해 본다. 최근에 나를 표현하는 동사에 ‘걷는다.’를 추가했다.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 싶어서 저녁 9시쯤 되면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뭔가를 실행에 옮기려는 동기가 필요한 순간 문장 하나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며 인내를 배우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디지털 대홍수 속에서 걷기는 나에게 노아의 방주와도 같다. 늘 하던 대로 충동적이고 질 낮은 도파민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 감각을 느끼면서 진정한 나로 숨 쉬는 시간이기 때문. 브르통은 걷기의 반대말을 집이라고 했다. 나는 살기 위해 매일 능동적으로 집을 떠난다. 내 걷기의 시작에는 불면증과 중독, 그리고 백내장이 있다.      


언젠가부터 자다가 깨는 일이 잦았다. 아예 잠드는 것 자체가 고역인 날도 많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이 있는 날이면 밤새 뒤척이면서 내일 컨디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옛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옛날 드라마 몰아보기는 ‘오늘도 잠이 안 오면 어떡하지?’라는 하는 고민 자체를 잊게 만들어줬다. 요즘엔 별 재미를 못 느껴서 tv를 잘 안 보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았던지. 중간에 광고 나오는 게 거슬려서 프리미엄 구독까지 했다. 

쇼핑도 거의 안 하는데 월에 만 얼마 정도는 나를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유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올여름엔 열대야가 유독 심했고 잠드는 게 고통과 동의어가 될 지경인지라 유튜브를 튼 채 잠드는 날이 잦았다.  

재수생 아들 아침밥을 챙겨주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데 매일 서너 시간밖에 못 자다 보니 피곤에 찌든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면 오늘부터 유튜브를 안보리라 다짐하고 하루가 끝날 즈음엔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날이면 의지력도 바닥났는데 수고한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고, 이대로 하루를 끝내기가 아쉬웠다. 의식하기도 전에 내 손은 이미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잠이 안 오는 건지 내가 잠을 미루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나 자기 성찰의 순간이 있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고 쓰고 싶지만 내 이야기엔 그런 바람직한 고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로운 습관은 눈이 뻑뻑해서 안과에 갔다가 백내장 진단을 받고서야 중단됐다. 백내장이 생긴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유가 뭐가 됐든 자기 파괴적인 습관을 이제 그만 멈춰야 했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신체적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현실에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여전할 때 공허함과 불안이 몰려올 때가 있다. 젊었을 때는 나이를 먹으면 자리도 잡고 마음이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초초하고 걱정이 많아질 줄이야.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쩌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스위치라도 있다면 당장 꺼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런 자신을 마주 하기 어려워 우리는 도망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불안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단순한 방법은 내면을 즉각적인 만족감으로 채우는 것이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폭식을 하거나 동영상이나 SNS, 게임 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자기 자신과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빠르게 접근가능한 도피처다. 


도파민 자체는 죄가 없지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중독성이 높다. 평범한 일상에 권태감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고, 결국 삶의 균형을 깨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안하거나 나이 먹는 게 서럽다는 이유로,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물질이나 행동에 과하게 의존한다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충동적인 행동으로 정신적인 허기를 매울 수 없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안다. 해서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나 둘씩 시도해 보는 중이다. 자극적이거나 고양감을 충족하는 활동에 비해 훨씬 심심하고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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